하느님 자비
하느님 자비 신심
성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시에 따라
내 딸아, 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온 세상에 알려라. [699]
고통받는 인류에게 내 자비로운 마음에 매달리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내가 그들을 평화로 채워 주리라. [1074]
「인간에게 하느님의 자비만큼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하느님 자비의 발자취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루카 1,78)
내면성과 영성, 인간의 종교적 소질을 가꾸고 펼치는 일 (...) 신앙을 살아가는 데서 오는 이 으뜸가는 과제들과 기쁜 열매들을 우리는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에서 발견합니다.
「오, 영적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것은 너무나 실재하여, 그에 비하면 바깥 생활은 공허한 환상이요 무력함일 뿐입니다!」 [884]
파우스티나 수녀는 지난 수십 년간의 발전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심지어 잊혀지기까지 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곧 영혼이 하느님과 함께하는 내적 생활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영혼들이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말할 때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짧은 시간에 성덕의 정상에 이를 것이다.」 [584]
참된 내면성은 하느님과 그분의 거룩한 뜻에 대한 기쁜 사랑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는 슬픔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886]
전적인 자유와 한계 없는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의 계명들은 억압적(누르는 것)이라고 불렸고, 심지어 하느님께서 몸소 인간 자유의 적대자로 선언되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Dominum et Vivificantem(「생명을 주시는 주님」, 38항)에서, 하느님께서 마침내 당신 피조물의 적으로 선언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빛나는 말로 이 신성 모독(하느님 모독)의 가면을 벗깁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영혼을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은 노예의 강압을 알지 못하는 여왕과 같습니다!」 [890]
내면 생활과 영적 생활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영혼의 상승은 비범한 행위로만 이룰 수 있다는 많은 신자들의 염려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작은 길」로 근거 없는 것이라며 물리쳤습니다. 이 전통에 온전히 충실하게,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는 신앙생활에서 결정적인 것, 곧 사랑을 목표로 삼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영혼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웅장한 행위가 아니라 오직 큰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이 가치를 이룹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에 가치를 줍니다. 그리하여 작고 일상적인 행위도 사랑으로 인해 하느님 앞에서 크고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사랑은 자신이 닿는 모든 것을 아름답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으로 바꾸는 신비입니다.」 [889]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그리고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고자 합니다. 자신을 내어 줌은 기쁨이며, 자신을 내어 주지 못함은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온전히 당신 자신을 바치십니다. 세상의 죄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십니다. 죄지은 인간 앞에서 사랑은 자비로 드러납니다(miseri cor dare = misericordia).
하느님의 자비는 인간의 비참함보다 큽니다. 죄지은 인간이 비참할수록, 하느님의 선하심은 그에게 더욱 자비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시는 이 전적인 마음가짐이 파우스티나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계시되었습니다. 그분의 특별한 소명은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그분이 그리도록 되어 있던 성화의 뜻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일깨우는 성화입니다. (…)
「나는 가장 큰 죄인이라도 벌할 수 없다. 그가 나의 자비에 호소하면, 나는 나의 헤아릴 수 없고 알아낼 수 없는 자비로 그를 의롭게 해 준다.」 [1146]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하신 계시에 따르면,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과 주님의 부르심에 열려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에서 자비의 강물이 사람들 위에 쏟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파우스티나 수녀는 무한한 자비에 대한 신뢰의 전령이 됩니다. 한 사람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설령 가장 무거운 죄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온전하고 줄어들지 않는 신뢰가 언제나 구원의 길입니다.
우리 하느님의 종의 완전한 수도명은 지극히 거룩한 성체의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입니다. 이 이름은 하느님과 깊이 결합된 이 삶의 또 다른 풍요로움, 곧 파우스티나의 삶에서 거룩한 영성체가 지니는 의미를 바라보게 해 줍니다. 그분은 거룩한 영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한 여러 준비 기도를 남겼습니다. 믿기 어려울 만큼의 사랑과 깊이로 가득한 보배들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영성체가 대량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수많은 영성체자들에게 자신이 누구를 모시는지, 좋은 준비와 합당하고 내적인 영접과 정성 어린 감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거듭 의식하게 해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은 언제나 거룩한 영성체를 모시는 순간입니다 … 천사들은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인간을 단 두 가지, 곧 거룩한 영성체와 고난에 대해서만 부러워할 것입니다.」 [1804]
마지막에 인용한 말씀으로 파우스티나의 삶의 또 다른 차원이 드러납니다. 고난은 그분의 친숙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성체성사의 거룩한 성체와 함께 그분은 스스로 제물, 곧 희생 제물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는,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고난받고자 하는 열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시간 중에 저에게 당신의 수난을 함께 느끼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는 수난 동안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쓰라림에 참여하였습니다.」 [872]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겪으셔야 하는 부당한 대우(어려움)에 대하여 그분께 보속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영성체 때에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딸아, 너의 사랑은 많은 영혼들의 마음의 냉담에 대한 나의 보속이 된다.」 [1816]
여기에서 신심의 역사 안에서 늘 알려져 온,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협력이 현실이 됩니다. (...) 비오 12세 교황은 회칙 Mystici Corporis(「신비체」)에서 이에 대해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소름 끼치는 신비이며 아무리 묵상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많은 이들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들이 이 목적을 위하여 스스로 짊어지는 기도와 자발적인 보속 행위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Heilslehre der Kirche, 489쪽, Frbg. Schweiz 1953)
이 영성 문학의 귀중한 보배인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를 읽고 나면 이런 물음이 절로 떠오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단 한순간이라도 살 수 있겠습니까?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 서문에서, 요제프 슈팀플레 주교 †, 아우크스부르크, 1987년 8월 6일
파우스티나 수녀와 그분의 사명
「모든 영혼 안에서 나는 자비의 일을 이룬다. 죄인이 클수록 나의 자비에 대한 그의 권리도 크다. 내 손이 이룬 모든 일 위에 나의 자비가 굳게 자리 잡고 있다.」 [723]
파우스티나 수녀의 사명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을 새로운 형태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신심의 토대는 하느님께 대한 어린이와 같은 신뢰와 이웃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이며, 이는 말하자면 그리스도인 완덕에 이르는 열쇠입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무엇보다 하느님의 업적을 묵상함으로써 알아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그분은 하느님께서 피조물들을 무에서 존재로 부르시는 유일한 이유를 봅니다. 그분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씁니다.
「오 하느님, 당신은 자비로 인류를 무에서 존재로 부르셨고 자연적이며 초자연적인 선물들을 풍성히 베풀어 주셨나이다. 그것으로도 당신의 선하심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았나이다. 당신은 자비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나이다. 저희가 당신의 영원한 행복에 이르고 당신의 내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니, 이는 오직 당신의 자비 때문이옵니다. 당신께서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것은 오직 당신께서 선하시고 사랑으로 가득하시기 때문이옵니다. 당신은 행복하시기 위해 저희를 필요로 하지 않으셨으나, 주님, 당신은 당신 자신의 행복을 저희와 나누고자 하시나이다.」 [1743]
하느님의 강생에서 그분은 하느님의 한없이 큰 자비를 더욱더 알아보며, 이 자비는 십자가 위의 구원 사건에서 가장 완전하게 드러납니다.
「당신의 자비로 – 그분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고백하였다 – 당신은 저희를 비참함에서 일으키시려고 저희에게 내려오셨나이다. (…) 주님, 당신 자비의 헤아릴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나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하느님께서 저희 가운데 사시니, 하느님의 말씀은 사람이 되신 자비이시나이다. 인간 본성을 취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스스로 낮추신 이 일은 그분 자비의 표현이요, 하늘도 놀라는 그분 사랑의 쏟으심이옵니다.」 [1745]
창조와 구원과 지복이라는 사업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깨닫는 일은 그분의 삶에서 매우 단순한 수단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곧 영적 독서, 매일의 묵상, 묵주기도의 신비들과 십자가의 길 처소들에 대한 묵상, 거룩한 성사들에 대한 깊은 체험, 전례력에 따른 교회의 축제들, 그리고 하느님께서 세상 안에서와 그분 개인의 삶 안에서 이루신 모든 선을 헤아려 보고 알아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 마음의 열쇠
하느님 자비 신심의 토대는 신뢰입니다. 신뢰는 말하자면 하느님 마음의 열쇠이며 모든 은총을 길어 올리는 그릇입니다.
「나의 자비에서는 오직 한 그릇, 곧 신뢰로 은총을 길어 올린다. 영혼이 신뢰할수록 더 많이 받는다.」 [1578]
이 신뢰는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가는 데서 증명됩니다. 이는 첫째, 그분의 계명과 우리 신분상의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둘째, 성령의 이끄심을 따름으로써, 셋째, 그분의 모든 섭리와 허락을 감사히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참조 444]
「내 딸아, 말하여라. 나는 온전히 사랑이며 자비라고. 영혼이 신뢰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오면, 나는 그 영혼이 자기 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은총으로 채워 주어, 그 은총이 다른 영혼들에게로 퍼져 나가게 할 것이다.」 [1074]
이웃에 대한 자비는 – 신뢰와 더불어 – 이 신심의 두 번째 본질적 구성 요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공경하는 이들이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하루 동안 이웃에게 적어도 한 번은 자비의 행동을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너는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이를 피할 수도, 둘러댈 수도, 변명할 수도 없다. 나는 네가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세 가지 방법을 준다. 첫째는 행동, 둘째는 말, 셋째는 기도이다. 이 세 단계에 자비의 충만함이 담겨 있으며, 이는 나에 대한 사랑의 흔들림 없는 증거이다. 이렇게 영혼은 나의 자비를 찬미하고 공경한다.」 [742]
그분은 또한 영혼에 대한 자비가 더 공로가 크다고 설명하시고, 이를 위해서는 물질적인 수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자비는 모든 사람, 특히 세례받은 모든 이가 복음의 메시지에 따라 베풀 수 있고 또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은 오로지 기도의 성격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깊이 체험된 한 가지 표현 형태입니다.

이 은총의 성화는 2005년 9월부터 빌뉴스(리투아니아)에 있는 하느님 자비의 성지에 모셔져 있습니다. 에우게니우시 카지미로프스키는 파우스티나 수녀의 설명에 따라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도록 의뢰받은 첫 화가였습니다. 그분은 1934년 이 성화를 처음 보았을 때, 자신이 뵙도록 허락되었던 만큼 예수님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기에 몹시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분을 위로하셨습니다. 「이 성화의 위대함은 색채의 아름다움이나 붓놀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은총에 있다.」 [313]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성화
「오 영원한 사랑이시여, 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모상을 그리라고 명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자비의 샘을 저희에게 열어 보이십니다. 당신의 광선에 다가가는 이들에게 강복하시니, 모든 검은 영혼이 눈처럼 변합니다.」 [1]
1931년 2월 22일 파우스티나 수녀가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만난 일은, 많은 사람이 은총의 강물을 받게 되는 그 비할 데 없는 성화에 대한 공경의 시작에 놓여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씁니다.
「저녁에 제 방에 있을 때 저는 주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흰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한 손은 강복하시려고 들려 있었고, 다른 손은 가슴의 옷자락을 만지고 계셨습니다. 옷깃이 열린 곳에서 (…) 두 줄기의 큰 빛줄기가 나왔는데, 하나는 붉고 하나는 옅었습니다. (…) 제 영혼은 두려움으로, 그러나 또한 큰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잠시 후 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따라 성화를 그려라. 그 아래에는 이렇게 써라. Jezu Ufam Tobie(예수님,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나는 이 성화가 먼저 너희 경당에서, 그다음에는 온 세상에서 공경받기를 바란다.’」 [47]
이 성화의 내용은 부활 시기 제2주일(하느님 자비 축일)의 전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날 교회의 복음은 만찬 방에서 부활하신 분께서 나타나신 일과 고해성사의 제정에 대하여 전합니다(요한 20,19-23 참조). 꿰찔린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의 빛줄기, 그리고 손과 발의 상처 자국은 성금요일에 일어난 사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요한 19,16-37 참조).
「자비의 빛줄기가 나를 태운다. 나는 그것을 사람들의 영혼 위에 쏟아붓고 싶다.」 [50]
자비로우신 예수님 성화의 특징은 두 줄기의 빛줄기이며, 주님께서 몸소 이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옅은 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뜻한다.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뜻한다. (...) 이 두 빛줄기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던 내 마음이 창으로 열렸을 때 나의 자비의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 그늘 아래 살게 될 이는 행복하다.」 [299]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는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성체성사 안에서 영혼은 언제나 새롭게 양식을 받습니다.
이처럼 이 성화는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큰 자비를 말해 주고, 다른 한편으로 신뢰와 이웃에 대한 실천하는 사랑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성화에 적힌 말은 신뢰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이 성화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자비의 요구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가장 강한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742]
이렇게 이해된 성화 공경에 주님께서는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성화를 공경하는 영혼은 멸망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한다.」 [48]
주님께서는 또한 그리스도인 완덕에 이르는 길에서의 큰 진보와 행복한 죽음의 은총, 그리고 사람들이 신뢰하며 당신께 청하게 될 그 밖의 모든 은총과 현세의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성화를 통하여 나는 영혼들에게 많은 은총을 주겠다. 그러므로 모든 영혼이 이 성화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570]

1943년에 화가 아돌프 히와는 전쟁에서 목숨을 건진 것에 감사하여 역시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그림을 그렸고, 이를 크라쿠프에 있는 자비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의 경당에 봉헌물로 바쳤습니다. 오늘날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자비로우신 예수님을 공경하고 은총을 청하기 위하여 이 성지를 찾아옵니다. 이 위대한 은총의 성화의 모사본들은 온 세상에 퍼져 있습니다.
하느님 자비 축일
「나는 부활 후 첫 주일이 자비의 축일이 되기를 바란다.」 [299]
「사제들은 이날 영혼들에게 나의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선포해야 한다.」 [570]
예수님께서는 1931년 프워츠크에서 자비로우신 예수님 성화의 탄생에 관한 당신의 뜻을 전하시면서 이 소망을 처음으로 밝히셨습니다. 이후 몇 해 동안 예수님께서는 이 열망을 열네 번 되풀이하셨고, 전례력에서 이 축일의 자리를 지정하시며, 축일을 제정하는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시고, 그 준비와 지내는 방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부활 팔일 축제를 마무리하는 부활 후 첫 주일을 택한 것은 부활 신비와 하느님 자비 축일 사이의 긴밀한 연관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계시되는 원천이며 정점입니다.
「하느님 자비 축일은 2000년 4월 30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하여 온 교회를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구원 사업은 거룩한 성사들 안에서 그 모든 충만함으로 나타나며, 이 축일의 전례는 이 성사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성사와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는 하느님 자비의 마르지 않는 샘이며, 교회는 온 땅의 모든 세대를 이 샘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자비의 주일은 이 신비 안에서 하느님을 특별히 공경하는 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특히 죄인들을 위한 은총의 날이어야 합니다.
「나는 자비의 축일이 모든 영혼, 특히 가련한 죄인들의 피난처요 은신처가 되기를 바란다. 이날 나의 자비의 깊은 곳이 열려 있다. 나는 나의 자비의 샘에 다가오는 영혼들 위에 은총의 바다를 쏟아붓는다. 고해성사를 하고 거룩한 영성체를 하는 영혼은 죄와 벌의 완전한 사면을 받는다. 이날 은총이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모든 수문이 열려 있다. 어떤 영혼도 나에게 다가오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죄가 주홍빛처럼 붉을지라도.」 [699]
하느님 자비 축일을 준비하는 것은 아흐레 동안 하느님 자비의 묵주기도를 바치는 데 바탕을 둔 9일 기도여야 합니다.
「이 9일 기도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영혼들에게 모든 은총을 주겠다.」 [796]
하느님 자비 축일은 2000년 4월 30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하여 온 교회를 위해 제정되었습니다.하느님 자비의 묵주기도
「하느님 자비의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너는 인류를 나에게 더 가까이 이끈다.」 [929]
「나는 이 기도를 통하여 그들이 나에게 청하는 모든 것을 주는 것이 기쁘다.」 [1541]
예수님께서는 1935년 9월 13일부터 14일에 이 기도를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불러 주셨습니다. [474–476] 예수님께서는 모두 열네 번 이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그 목적과 이 기도에 따르는 약속들을 설명하셨습니다. 이 기도 안에서 우리는 성부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성체와 성혈, 영혼과 신성을 저희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봉헌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루신 십자가 위의 제사와 하나가 되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호소합니다. 이때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영광을 눈여겨본다면, 예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네가 청하는 것이 나의 뜻과 일치하기만 하면 너는 모든 것을 얻어 낸다.」 [1731]
예수님의 약속에 따르면 특히 죄인들과 임종하는 이들이 특별한 은총을 받게 됩니다.
「사제들이 이 기도를 죄인들에게 마지막 구원의 닻으로 건네줄 것이다. 가장 완고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이 묵주기도를 단 한 번이라도 바치면, 나의 무한한 자비의 은총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다.」 [687]
임종하는 이들 곁에서 이 자비의 묵주기도가 바쳐지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임종하는 이 사이에 의로운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자비로운 구세주로서 서 계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1541]
그러나 약속된 모든 은총을 얻으려면,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끈기 있는 신뢰와 우리 죄에 대한 진심 어린 통회로 특징지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이 자기 죄의 무거움을 보고 깨달을 때, 자기 비참함의 온 심연이 눈앞에 펼쳐질 때 (…) 절망해서는 안 되고,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이 신뢰를 가지고 나의 자비의 품에 몸을 던져야 한다.」 [1541]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에 따르면, 통회는 세상을 새롭게 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통회로 우리는 우주 세계를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통회의 힘은 자연이 꽃피고 열매 맺게 합니다. 성녀는 이렇게 씁니다. 「통회 안에서 사람은 자신의 죄를 부순다. 통회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주님의 수난에서 솟아난다 …」 성녀 힐데가르트는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를 받습니다. 「너는 죄를 지었는데 왜 돌아오지 않느냐? 나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나의 사랑의 가장 큰 힘, 곧 통회를 너에게 내어 준다.」
하느님 자비 9일 기도
자비의 시간
「이 시각에 온 세상을 위한 은총이 왔다. 자비가 정의를 이겼다.」 [1572]
1937년 10월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임종의 시간을 기억하라고 권하셨고, 이 시간을 몸소 「세상을 위한 큰 자비의 시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1320] 1938년 2월에 주님께서는 이 열망을 되풀이하시며, 자비의 시간에 바치는 기도의 방식과 거기에 덧붙인 약속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에 당신의 쓰라린 고난을 기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고 찬송하며, 당신의 쓰라린 고난의 공로로 세상을 위해,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필요한 은총을 청하기를 바라십니다.
「나는 네게 상기시킨다 (...) 세 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전히 나의 자비 안에 잠겨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고 찬미하여라. 온 세상을 위하여, 특히 가련한 죄인들을 위하여 자비의 전능을 청하여라. 지금 이 시각에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자비가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1572]
그러나 이 약속들을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합니다.
기도는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후 3시에 바쳐야 합니다.
주님의 수난에 호소해야 합니다. [참조 1320]
그 밖에도 하느님 자비에 대한 신심은 신뢰의 자세와 이웃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과 결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하느님 자비를 공경하기에 알맞은 기도의 형태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각에 십자가의 길을 바치도록 힘써라.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잠시 경당에 가서, 지극히 거룩한 제대의 성사 안에 자비로 가득하여 머무시는 내 마음을 공경하여라. 그것도 불가능하면, 네가 있는 곳에서 잠시라도 기도 안에 잠기어라. 이 시각에 너는 너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청할 수 있다.」 [1572]
우리 주님의 죽음의 시간을 위한 기도 (오후 3시)
자비로우신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의 당신의 쓰라린 죽음을 감사히 기억하며, 저는 깊은 경외심으로 당신을 흠숭하고 헤아릴 수 없는 구원의 은총을 찬미하나이다. 겸손히 청하오니, 온 인류를 자비로 돌아보시고 특히 가난한 죄인들과 임종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불가해한 자비를 보여 주소서. 아멘.
영혼의 회심을 위한 기도
「네가 뉘우치는 마음과 믿음으로 죄인을 위하여 다음 기도를 바치면, 나는 그에게 회심의 은총을 주겠다. 기도는 이렇다.
예수님의 성심에서 우리를 위한 자비의 샘으로 흘러나온 피와 물이시여,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186]
자비의 성모님
「나는 세상에 구세주를 주었다. 너는 세상에 그분의 큰 자비를 이야기하고, 그분의 재림을 준비시켜야 한다.」 [635]
파우스티나 수녀는 일기에서 여러 번 천주의 성모님을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개자로 뵐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 저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밝은 옷을 입으신 천주의 성모님을 뵈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가슴에 손을 모으시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에서 불타는 빛줄기들이 나왔는데, 일부는 하늘로 올라가고 다른 일부는 우리 땅을 덮었습니다.」 [33]
1935년 8월 5일, 자비의 성모 축일에 파우스티나 수녀는 다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마리아를 뵈었고, 이번에는 마리아께서 그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로 말미암아 너희의 어머니이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영혼이 나에게 가장 사랑스럽다.」 [449]
이 말씀으로 마리아께서는 큰 자비의 시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며 당신 어머니를 말하자면 자비의 문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의 구속 공로를 전달하는 위대한 은총의 중재자이십니다(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Lumen Gentium), 62항). 마리아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희생을 하느님의 마음까지 올려 드립니다. 그래서 마리아께서는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을, 그리고 온 인류를 대신하여 당신의 어머니다운 성심에 봉헌하라고 거듭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마리아께 대한 이 봉헌을 통하여 우리는, 마리아께서 이미 1917년 파티마에서 예고하신 당신 티 없으신 성심의 승리에 함께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에 대한 봉헌
지극히 거룩한 동정 마리아님이시여!
천주의 성모님이시요 저의 어머니시여! 저는 제가 된 모든 것과 가진 모든 것으로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에 봉헌하나이다. 저를 당신의 어머니의 보호 아래 받아 주시옵소서! 저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시옵소서. 악으로 이끄는 유혹을 이기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저의 육신과 영혼의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하소서.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이 저의 피신처이시며 하느님께로 이끄는 길이 되시옵소서.
예수님을 사랑하여 자주 기도하고 희생하며, 죄인들의 회심을 위하여,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에 범한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저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당신과 당신 성자의 성심과 함께 저는 제가 믿고, 경배하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에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고자 하나이다. 아멘. (M. 루치아 수녀)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
「내가 의로운 심판자로 오기 전에, 나는 나의 자비의 문을 활짝 연다. 나의 자비의 문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 이는 나의 정의의 문을 지나야 한다.」 [1146]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또한 인간이 영원한 지복으로 불리었다는 사실 안에서 알아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하심과 자비로 그분에게,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된 천상 영광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볼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셨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가 일기에서 전하는 또 하나의 일은 정화의 장소(연옥)에 머물렀던 일입니다. 거기에서 그분은 하느님의 정의에 대하여 자기 죄를 보속하는 고통받는 영혼들을 보았는데, 이 또한 하느님 자비의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이 영혼들은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언젠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고통의 장소인 지옥은 전혀 다릅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천사에 의해 지옥의 심연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지옥이 존재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끔찍한 고통을 겪는 저주받은 영혼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늘을 들여다봄
「오늘 저는 영 안에서 하늘에 있었고, 죽음 뒤에 우리를 기다리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보았습니다. 저는 모든 피조물이 쉼 없이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느님 안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모든 피조물 위에 쏟아져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모든 영광과 영예가 그 행복에서 샘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 하느님의 내적 생명을 묵상하지만, 그것을 결코 파악하거나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 행복의 샘은 그 본질에서 변함없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우며, 모든 피조물을 행복하게 하며 솟아납니다. 이제 저는 성 바오로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1코린 2,9)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눈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한 가지를 제가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사랑, 그리고 다시 한번 사랑입니다. 순수한 하느님 사랑의 단 한 번의 행위와도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오 나의 하느님,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저는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들도 자비의 빛줄기에 사로잡히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당신 아버지의 마음에 품어 안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777–780]
연옥에서
수도 생활 초기에 짧은 병중에 파우스티나 수녀는 예수님께 자신이 또 누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밤에 제가 누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지 알게 해 주시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수호천사를 뵈었는데, 천사는 저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명하였습니다. 갑자기 저는 안개가 자욱하고 불로 가득 찬 곳에 있었고, 그곳에는 고통받는 영혼들이 많았습니다. 이 영혼들은 매우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들을 둘러싸고 타오르는 불꽃은 저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의 수호천사는 한순간도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혼들에게 그들의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을 그리워함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천주의 성모님께서 연옥의 영혼들을 찾아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혼들은 마리아를 ‘바다의 별’이라고 부릅니다. 성모님은 그들에게 위안을 가져다주십니다. 저는 그들과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수호천사가 제게 떠나자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 저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자비는 이를 원하지 않지만, 정의가 이를 요구한다.’
그때부터 저는 고통받는 영혼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20]
지옥으로 내려감
「오늘 저는 천사에 의해 지옥의 심연으로 인도되었습니다. 그곳은 큰 고통의 장소이며 그 넓이는 끔찍하게 큽니다. 제가 본 고통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옥을 이루는 첫째 고통은 하느님을 잃은 것입니다. 둘째는 끊임없는 양심의 가책, 셋째는 이 운명이 결코 다시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고통은 영혼을 꿰뚫으면서도 그것을 파괴하지 않는 불입니다. 이것은 끔찍한 고통이며, 하느님의 진노로 타오른 순전히 영적인 불입니다. 다섯째 고통은 끊임없는 어둠과 끔찍하게 숨 막히는 악취입니다. 어둡지만 악마들과 저주받은 영혼들은 서로를 보며, 다른 이들의 모든 악과 자기 자신의 악도 봅니다. 여섯째 고통은 사탄과의 끊임없는 동행입니다. 일곱째 고통은 끔찍한 절망, 하느님에 대한 증오, 모독과 저주와 비방입니다. 이것들은 모든 저주받은 이들이 함께 겪는 고통이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영혼들에게는 특별한 고통, 곧 감각의 고통이 따로 있습니다. 각 영혼은 자기가 죄를 지은 바로 그것으로 끔찍하고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고통받습니다. 고통이 저마다 서로 다른 끔찍한 동굴과 고문의 심연들이 있습니다. 이 끔찍한 고통 앞에서 만일 하느님의 전능이 저를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죄인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를 짓는 감각 기관으로 영원토록 고통받게 되리라는 것을. 저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이것을 씁니다. 어떤 영혼도 지옥이 없다고, 또는 거기에 아무도 가 본 적이 없으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고 핑계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지옥의 심연에 있었습니다. 영혼들에게 지옥이 존재함을 알리고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이에 대하여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이 이것을 글로 남기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마들은 저에게 큰 증오를 품었으나, 하느님의 명령으로 저에게 순종해야 했습니다. 제가 적은 것은 제가 본 것들의 빈약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한 가지는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 지옥을 믿지 않았던 영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곳의 영혼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생각하면 공포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죄인들의 회심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합니다. 쉬지 않고 그들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합니다. 오 나의 예수님, 저는 가장 작은 죄로 당신을 모욕하느니 차라리 세상 끝날까지 고통을 겪겠습니다. 」 [741]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의 이 개인적 증언은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기에 더욱 주목할 만합니다.
「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그 영원함을 가르친다. … 죽을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죽는 것은 곧 영원히 하느님과 헤어져 있겠다고 우리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5, 1033항)
하느님 자비의 기도
「가장 행복한 영혼은 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영혼이다. 내가 몸소 그를 돌보기 때문이다.」 [1273]
파우스티나 수녀의 기도 [163]
내 가슴이 숨쉴 때마다, 내 심장이 뛸 때마다, 내 몸에서 피가 맥박질 때마다, 저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이시여, 그만큼 수천 번 당신의 자비를 찬미하고자 합니다. (…) 하느님의 이 가장 위대한 속성, 그분의 불가해한 자비가 내 마음과 영혼을 통하여 이웃에게 전해지게 하소서.
주님, 제 눈이 자비로 보게 하시고, 결코 의심하거나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며, 이웃의 영혼에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고 그들을 도우러 가게 하소서.
제 청력이 자비로워지게 하시고, 이웃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며, 제 귀가 이웃의 고통과 한탄에 무관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제 혀가 자비로워지게 하시고, 결코 이웃에 대해 악을 말하지 않게 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용서의 말을 하게 하소서.
주님, 제 손이 자비롭고 선행으로 가득하게 하시며, 이웃에게만 선을 행하고 더 어렵고 더 수고로운 일을 맡게 하소서.
제 발이 자비로워지게 하시고, 항상 이웃을 돕기 위해 서두르며 제 자신의 피로와 고단함을 극복하게 하소서. 제 참된 안식은 이웃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주님, 제 마음이 자비로워지게 하시고, 이웃의 모든 고통을 느끼며, 아무에게도 제 마음을 거절하지 않고, 제 친절을 악용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과 진심으로 교제하게 하소서; 저는 예수님의 지극히 자비로우신 성심 안에 제 자신을 닫아둘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침묵하겠습니다. 오 주님, 당신의 자비가 저 안에 머물게 하소서.
오 나의 예수님, 저를 당신 안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 자비 호칭 기도 [949]
하느님의 자비,
성부의 품에서 솟아나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속성,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의 불가해한 신비,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에서 솟는 샘,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사람이나 천사의 지성으로 측량할 수 없으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그로부터 모든 생명과 행복이 흐르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하늘 위에 드높이 계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기적과 신비의 샘,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온 우주를 포괄하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말씀이 육신이 되신 위격으로 세상에 오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예수 성심의 열린 상처에서 흘러나오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예수 성심 안에 저희와 특히 죄인들을 위하여 담기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의 제정에서 다함이 없으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거룩한 교회의 설립에서,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거룩한 세례성사에서,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저희의 의화에서,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 온 생애를 통해 동행하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특히 저희 죽음의 시각에 저희를 끌어안으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에게 영생을 주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 생의 매 순간 저희 곁에 계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를 지옥의 불에서 보호하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완고한 죄인들의 회심에서,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천사들에게 경이요 성인들에게 불가해하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의 모든 신비에서 다함이 없으신,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를 모든 비참함에서 들어 올리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 행복과 기쁨의 샘,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를 무에서 생명으로 부르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그분 손의 모든 사업을 포괄하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존재하는 모든 것과 앞으로 있을 모든 것에 관을 씌우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저희 모두가 그 안에 잠겨 있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괴로워하는 마음들의 달콤한 위로,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절망한 영혼들의 유일한 희망,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마음들의 안식, 공포 가운데 평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거룩한 영혼들의 기쁨과 황홀,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하느님의 자비,
희망 없음에도 신뢰를 깨우시는,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오 영원하신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자비는 다함이 없고 당신의 연민의 보화는 끝이 없으시니, 은총으로 저희를 굽어보시고 저희 안에서 당신의 자비를 늘려 주소서. 어려운 때에 저희가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당신의 거룩한 뜻 — 그 자체가 사랑이자 자비이신 — 에 큰 신뢰로 복종하기 위함이옵니다. 아멘.
자비로우신 예수께 대한 봉헌
자비로우신 예수시여, 당신의 선하심은 무한하며 당신 은총의 보물은 다함이 없나이다. 저는 당신의 모든 사업을 뛰어넘는 당신의 자비에 무한한 신뢰를 두나이다.
저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 마음에서 흘러나온 당신 은총과 사랑의 광채 안에서 살기 위해 온전히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저는 당신의 자비를 전파하고 특히 하느님 자비의 묵주기도를 바치며 우리를 위하여, 죄인들의 회심을 위하여, 온 세상을 위하여, 연옥의 영혼들을 위하여 당신의 자비를 구하고자 하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저를 당신의 소유이자 당신의 영예로 지켜 주시리니, 이는 저는 제 나약함으로 인해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당신의 자비로 인해 모든 것을 희망하기 때문이옵니다.
온 인류가 당신 자비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인식하고 그 안에 온 희망을 두며 영원히 찬미하도록 하소서. 아멘.
예수님이시여, 저는 당신을 신뢰하나이다, 당신이 곧 저의 신뢰이시기 때문이옵니다!
내적 삶의 십자가의 길
(참조: 자비가 풍부하신 하느님)
「나의 수난을 경건히 묵상하는 영혼들에게 가장 많은 은총을 허락한다.」 [737]
시작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나의 스승이시여, 저는 당신을 충실히 따르고 제 삶에서 더욱 완벽하게 당신을 본받고 싶나이다. 그러므로 당신 수난의 묵상을 통하여 영적 삶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은총을 제게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마리아, 자비의 어머니시여, 당신 아들의 쓰라린 수난의 길로 저를 인도하시고 이 십자가의 길을 풍요롭게 체험하는 데 필요한 은총을 얻어 주소서. 저는 이 기도를 특별히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성화와, 참된 내면 생활과 완덕을 갈망하는 모든 이를 위해 봉헌하나이다.
매 처소 전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는 당신을 흠숭하며 찬미하나이다.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셨기 때문이옵니다.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심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거짓 증언을 찾았다.
(마태오 26,59-60)
예수님:
「가끔 네가 무고하게 의심을 받게 되더라도 놀라지 마라. 너를 사랑하여 내가 먼저 무고한 수난의 잔을 마셨단다.」 [289]
「내가 헤로데 앞에 서 있었을 때, 나는 네가 사람들의 멸시를 초월하여 나의 길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은총을 빌어주었단다.」 [1164]
성녀 파우스티나:
「우리는 말에 반응하는 데 익숙해져서, 우리가 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항상 즉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침묵하는 영혼은 강합니다. 침묵 속에 머물러 있다면 어떤 역경도 그 영혼을 해치지 못합니다. 침묵하는 영혼은 하느님과 지극히 친밀하게 결합할 수 있습니다.」 [477]
자비로우신 예수님, 제가 모든 인간적인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제가 제 이웃 안에서 당신을 심판하는 일이 결코 없게 하소서.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터’라는 곳으로 나가셨다. 그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타라고 한다.」
(요한 19,17)
예수님:
「수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151]
「네가 수난을 사랑하면 할수록, 나에 대한 네 사랑은 더욱 순수해질 것이다.」 [279]
성녀 파우스티나:
「예수님, 매일의 작은 십자가들, 제 계획에 대한 장애물들, 공동 생활의 부담, 제 의도에 대한 잘못된 해석, 타인에 의한 굴욕, 저희에 대한 가혹한 대우, 근거 없는 비난, 허약한 건강과 기력 소진, 제 의지의 포기, 자아의 소멸, 모든 일에서의 인정 결핍, 모든 계획의 좌절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343]
자비로우신 예수님, 제게 삶의 부담과 질병과 모든 고통을 소중히 여기고 이 매일의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제3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 첫 번째로 넘어지심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사야 53,5)
예수님:
「영혼들의 비의도적인 과실은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멈추게 하지 않으며 (…) 나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고의로 저지른 아주 작은 과실이라도 나의 은총을 가로막는다. 그런 영혼들에게는 나의 선물을 가득 부어줄 수가 없구나.」 [1641]
성녀 파우스티나:
「오 나의 예수님, 저는 얼마나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지요. 그것은 제가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비참함 속에서도 풍성히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합니다.」 [606]
자비로우신 주님, 비록 아주 작을지라도 고의로 저지르고 의식적인 모든 불충실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제4처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만나심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루카 2,35)
예수님:
「나의 뜻에 따라 생겨난 모든 일이 큰 고통에 노출되더라도, 그중 어느 하나가 나의 직접적인 사업인 구원 사업보다 더 큰 고통에 노출되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너는 역경 때문에 너무 슬퍼해서는 안 된다.」 [1643]
성녀 파우스티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딸아, 알아라. 비록 내가 천주의 성모라는 품위로 들어 높여졌지만, 일곱 자루의 고통의 칼이 내 마음을 꿰찔렀단다. 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모든 것을 겸손하게 견뎌라. 하느님 친히 너를 방어해 주실 것이다.’」 [786]
고통의 어머니 마리아님, 당신께서 아드님의 십자가 길에 함께하셨던 것처럼, 특히 고통 중에 항상 저와 함께하소서.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와 지심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을 붙잡아 (…)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을 뒤따르게 하였다.」
(루카 23,26)
예수님:
「어려움들을 허락하는 이유는 네 공로를 배가하기 위해서란다. 나는 좋은 결과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바친 인내와 노고에 대해 보상한다.」 [86]
성녀 파우스티나:
「오 나의 예수님, 당신은 어떤 행위의 좋은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의지와 노고에 대해 보상하십니다. 그러므로 제 모든 노력과 수고가 헛수고로 돌아가거나 결코 실현되지 않더라도 저는 아주 평온합니다. 제가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모든 일을 다 한다면, 나머지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952]
주 예수님, 저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가 오직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의 의도를 정화하소서.
제6처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이사야 52,14)
예수님:
「알아라, 네가 어떤 영혼에게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네가 나 자신에게 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1768]
성녀 파우스티나:
「선함 자체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저는 선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하여 제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딸이라 불릴 수 있게 하소서.」 [669]
「큰 사랑은 작은 일들을 큰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303]
주 예수님, 나의 스승이시여, 저의 눈과 손과 입과 마음이 자비롭게 하소서. 저를 자비로 변화시켜 주소서.
제7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 두 번째로 넘어지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이사야 53,4)
예수님:
「네가 패배하는 이유는 네 자신을 너무 많이 믿고 나에게 너무 적게 의지하기 때문이란다.」 [1488]
「너 자신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라.」 [639]
「나의 특별한 도움 없이는 너는 나의 은총을 받아들일 능력조차 없단다.」 [738]
성녀 파우스티나:
「예수님, 저를 혼자 두지 마소서. (…) 주님, 당신은 제가 얼마나 약한지 아십니다. 저는 비참함의 심연이며 오로지 허무일 뿐입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저를 혼자 두신다면 제가 넘어지는 것이 어찌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1489]
「그러니 예수님, 당신은 어머니가 약한 아이 곁에 있듯이, 아니 그보다 더 항상 저와 함께 계셔야 합니다.」 [264]
주님, 당신의 은총이 저를 도와주시어 제가 계속해서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제가 넘어진다면, 다시 일어나 당신의 자비를 찬미하도록 도와주소서.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루카 23,27)
예수님:
「오, 살아있는 믿음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1421]
「나는 지금 이 시대에 너희에게 더 많은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353]
성녀 파우스티나:
「주님, 당신께 간절히 청하오니 제 믿음을 강화해 주시어, 제가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인간적인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성령에 의해 인도되게 하소서. 오, 모든 것이 사람을 땅으로 끌어내리지만, 살아있는 믿음은 영혼을 더 높은 영역에 머물게 하며 자애심(自愛心)을 마땅한 자리, 즉 맨 마지막 자리에 둡니다.」 [210]
자비로우신 주님, 거룩한 세례와 믿음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끊임없이 외칩니다. 주님, 저는 믿나이다. 제 믿음을 더해 주소서!
제9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 세 번째로 넘어지심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야 53,7)
예수님:
「알아라, 완덕에 이르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기력함과 근거 없는 불안이란다. 그것들은 네가 덕을 닦을 기회를 앗아간다. (…) 나는 항상 너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네가 나에게 용서를 청할 때마다 너는 나의 자비를 찬미하는 것이다.」 [1488]
성녀 파우스티나:
「나의 예수님, 당신의 은총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모든 비참함을 느끼고 봅니다. 저는 투쟁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냅니다. 한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자마자 그 자리에 싸워야 할 열 가지 새로운 어려움이 솟아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때문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평화의 때가 아니라 투쟁의 때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606]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유일한 소유물인 죄와 인간적인 약함을 당신께 드립니다. 저의 비참함이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 속에 잠기기를 간절히 청하나이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을 당하심
「이로써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요한 19,24)
성녀 파우스티나:
「예수님께서 갑자기 제 앞에 서 계셨습니다. 옷은 벗겨지셨고 온몸은 상처로 덮여 있었으며, 눈은 피와 눈물로 가득 찼고 온 얼굴은 망가져 침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신부는 신랑을 닮아야 한다.」
성녀 파우스티나:
「저는 이 말씀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닮음은 고통과 겸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268]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저희 마음을 당신 성심과 같게 하소서.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마르코 15,22.25)
예수님:
「나의 제자야, 너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에게 큰 사랑을 품어라. 너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선을 행하여라.」 [1628]
성녀 파우스티나:
「오 나의 예수님, 우리 본성이 거부하는 이들이나 우리에게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준 이들에게 정직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당신은 아십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순간에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사람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이 예수님을 위해서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합니다.」 [참조 766]
오 가장 순결한 사랑이시여, 제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시고 모든 인간적인 척도를 넘어서는 것을 사랑하도록 저를 도와주소서. [참조 328]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루카 23,46)
예수님:
「이 모든 것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네가 그들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1184]
성녀 파우스티나:
「저는 예수님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수많은 영혼을 보았습니다. 저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영혼의 무리를 보았습니다. 두 번째 무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는 않았지만, 영혼들이 십자가를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무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았고 손에 쥐고 있지도 않았으며, 십자가를 뒤에 끌고 가며 불만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고통과 멸시 속에서 나와 닮은 영혼들이 보이느냐? 그들은 영광 속에서도 나와 닮을 것이다. 반면에 고통과 멸시 속에서 나를 덜 닮은 이들은 영광 속에서도 나와 덜 닮게 될 것이다.」 [446]
나의 구세주 예수님, 저를 당신 성심의 깊은 곳에 숨겨 주시어, 제가 당신 은총으로 강화되어 십자가에 대한 사랑 안에서 당신을 닮고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제13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지시어 어머니의 품에 안기심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은 (…)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리하여 빌라도가 허락하였다.」
(요한 19,38)
예수님:
「나의 선함을 굳게 믿는 영혼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단다. 나는 그 영혼에게 나의 신뢰를 선물하고 그가 청하는 모든 것을 준다.」 [453]
성녀 파우스티나:
「인자하신 하느님, 오직 당신만이 선하시기에 저는 당신의 자비로 피신하나이다. 비록 제 비참함이 크고 제 과실이 많을지라도 저는 당신의 자비를 신뢰합니다. 당신은 수 세기 동안 들어본 적이 없는 자비의 하느님이시며, 하늘과 땅은 당신의 자비를 신뢰한 영혼이 실망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730]
자비의 어머니 마리아님, 내면 생활의 길로 저를 인도하소서. 고통받는 법을, 그리고 고통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셨다.」
(마태오 27,59-60)
예수님:
「너는 아직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은총으로 강화되어 가서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나의 나라를 위해 싸워라. 왕의 자녀처럼 싸우고, 유배의 날들은 빨리 지나가며 그와 함께 하늘나라를 위한 공로를 쌓을 기회도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해라. 나는 너로부터 (…) 영원히 나의 자비를 찬미할 수많은 영혼을 기대하고 있다.」 [1489]
성녀 파우스티나:
「예수님, 당신께서 제게 맡겨주신 모든 영혼을 제가 기도와 희생으로 지원하여 당신의 은총이 그 안에서 작용할 수 있게 하기를 원합니다. 영혼들의 위대한 친구이신 나의 예수님, 당신께서 영혼들을 저희의 보살핌 아래 자비롭게 맡겨주신 그 큰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245]
자비로우신 주님, 당신께서 제게 맡겨주신 영혼들 중 단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 후 기도
나의 예수님, 저의 유일한 희망이시여, 제 영혼의 눈 앞에 펼쳐 보여 주신 책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 책은 저를 사랑하여 당신이 감수하신 당신의 수난입니다. 이 책으로부터 저는 하느님과 영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저희를 위한 헤아릴 수 없는 보물들을 담고 있습니다.
오 예수님, 사랑 때문에 겪으신 당신의 수난 속에서 당신을 이해하는 영혼이 이토록 적다니요! (…) 예수 성심의 사랑을 깨달은 영혼은 행복합니다. [304]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 약력 (1905-1938)
「단 한 영혼을 영원히 구원할 수 있다면, 평생 희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 [1435]
파우스티나 수녀가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의 이름은 헬레나 코발스카였습니다. 그분은 1905년 8월 25일 폴란드의 글로고비에츠 마을에서 가난한 농가의 열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일찍부터 헬레나 안에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수도원 입회에 요구되는 지참금을 마련할 형편이 못 된다고 여겨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헬레나는 세속의 일들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억누르려 하였습니다.
무도회에서의 깊은 체험이 그분 안에 다시 첫 열망을 일깨웠습니다. 춤을 추던 중에 그분은 갑자기 고문당하여 온몸이 상처로 덮인 예수님이 곁에 계신 것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그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를 참아야 하고, 너는 언제까지 나를 미루겠느냐?」 [9]
예수님과의 이 만남은 그분의 소명 이야기에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영혼 깊이 충격을 받은 그분은 곧바로 성당으로 가서 감실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 자세로 하느님께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그분은 마음속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즉시 바르샤바로 가라. 그곳에서 너는 수도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10]
지난 삶을 뒤로하고 그분은 망설임 없이 바르샤바로 가서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애썼습니다.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다가, 마침내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곳에 그분은 1925년 8월 1일 입회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소박한 수도자를 택하시어, 성경에 계시된 당신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진리를 인류에게 가까이 가져다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명에는 또한 알맞은 공경의 형태를 통하여 온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일이 속하였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신뢰와 자비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쇄신하는 운동을 일으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사명을 완수하는 데 온전히 충실하였던 그분은 이미 33세의 나이로 1938년 10월 5일 크라쿠프-와기에브니키 수도원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3년 4월 18일 파우스티나 수녀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하여 시복되었습니다. 2000년 4월 30일 그분을 시성하면서 교황은 또한 「하느님 자비 축일」을 온 교회를 위하여 공식적으로 제정하고, 그 지냄을 부활 후 첫 주일(백의 주일)로 정하였습니다.
「나의 자비로운 마음을 바라보고, 그 자비를 너 자신의 마음과 행동 안에 비추어라.」
– 예수님께서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우리는 이웃에게 용서를 베풀 때 하느님과 가장 닮습니다.」
–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