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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한 감사

주 저의 하느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며 영원토록 당신 이름에 영광을 드리렵니다. 시편 86,12

마리아 사제·평신도 운동의 이 소책자는 존귀한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한 감사로 새롭게 발견하도록 초대합니다. 소책자는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이라는 응답,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실천, 거룩한 미사의 은총의 강물, 예수 성심의 열쇠, 그리고 순간의 은총을 다루며, 카푸친회 수사 칸탈리체의 펠릭스와 같은 감사하는 성인들을 소개합니다.

저울 위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다음의 실화는 1852년, 당시 아직 오스트리아 땅이던 글라츠 지방의 작은 도시 알벤도르프에서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벌써 오래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운을 북돋는 국을 끓일 고기 한 덩이를 정육점 주인에게 청하려 하였습니다. 그녀가 사정을 이야기하자 정육점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습니다. 「그런 손님은 달갑지 않소. 나는 현금을 보고 싶소.」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하고 작은 어머니가 말하였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한마디를 드리리다. 그건 무게가 제법 나간다오.」 정육점 주인이 비웃으며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 얼마나 나가겠소. 곧 알게 되겠지.」 그는 종이 한 장을 집어 그 위에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라는 말을 쓰고 저울의 한쪽 접시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는 제 눈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접시가 덜컥 아래로 내려앉은 것입니다. 그는 서둘러 옆 탁자에서 고기 한 덩이를 잘라 다른 쪽 접시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접시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덩이를, 세 번째 덩이를 올려놓고, 마침내 탁자 위에 놓인 고기를 전부 올려놓았지만,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 놓인 접시를 들어 올리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접시는 계속 아래로 처져 있었고, 많은 고기가 놓인 다른 접시는 위에 그대로 떠 있었습니다. 정육점 주인은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말하였습니다.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소.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 내 고기 전부보다 더 무겁구려.」

그는 어리둥절해하는 여인에게 제법 큰 고기 한 덩이를 주었고, 그 뒤로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한마디를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이 이야기를 자주자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증조할아버지 시대에 직접 겪은 사람들이 증언한 것입니다.1

온 세상도 당신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 같습니다. 지혜 11,22

1 보나벤투라 블라트만 신부(OFM) 저, Vergelt's Gott, Imprimatur: Augsburg, 1938년 5월 30일, vic. gen.(총대리) Dr. Eberle.

감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성경이 얼마나 자주 우리에게 감사와 감사 인사를 촉구하는지를 보면, 그것이 우리의 영적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많은 시편이 말 그대로 감사의 마음으로 넘쳐흐르고, 성 바오로는 공동체에 감사드리라고 촉구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감사하는 영혼들을 각별한 사랑으로 감싸 안으시고 당신의 은혜로 말 그대로 흠뻑 적셔 주십니다. 우리가 가장 큰 은인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진심 어린 감사마다, 하느님께서는 곧바로 우리 각자의 필요에 맞는 새 은총을 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감사(Gratias)와 은총(Gratia)이라는 낱말이 같은 라틴어 어근에서 나왔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총과 감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은총(gratia)은 하느님께서 한 사람을 당신 마음에 들게 하시는, 스스로를 나누어 주시는 호의이고, 감사 행위(gratiarum actio)는 이 받을 자격 없는 선물에 대하여 은총이 사람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응답입니다.

은총이 감사가 될 때에야 비로소 그 목적에 이릅니다. 반대로 배은망덕은 은총을 저버리는 일임이 드러납니다. 이웃에게 선을 행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배은망덕이나 피상적인 당연시의 태도에 부딪힐 때 우리는 얼마나 아프게 느낍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의 천박한 배은망덕으로 훨씬 더 깊이 상처를 입으십니다. 이미 구약의 지혜서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당신께 감사하기 위하여 해 뜨기 전에 일어나야 하고 동틀 녘에 당신께 기도해야 함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자의 희망은 겨울 서리처럼 녹아 버리고 쓸데없는 물처럼 흘러가 버립니다.」 (지혜 16,28-29)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신 뒤에 우리 구세주께서 하신 물음은 또 얼마나 슬프게 들립니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루카 17,15-18)

독일어 낱말 ‘Danken’(감사하다)은 ‘Denken’(생각하다)에서 왔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이 잊지 않음을 말과 행동으로도 드러내는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럴 때 매우 자주 우리의 한계에 부딪힙니다. 하느님께서 매 순간 우리에게 베푸시는 선을 우리가 결코 조금이라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많은 상황에서 은인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표시도 받은 것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바로 그런 순간에, 널리 쓰이는 감사의 형식인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우리가 받은 것을 은인들에게 대신 갚아 주시기를 청하는 일은 비할 데 없이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은혜입니다.2

부모님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사랑하올 하느님, 저를 위하여 그분들을 지켜 주소서.
제가 갚을 수 없으니, 하느님, 그분들이 제게 베푼 선을 대신 갚아 주소서!

2 참조: 베른바르트 데네케 박사 신부(FSSP), Informationsblatt der Priesterbruderschaft St. Petrus, 2025년 8/9월호.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력한 감사

성덕이 높은 프란치스코회 사제 보나벤투라 블라트만 신부(1860-1942)는 「Vergelt's Gott」라는 제목의 소책자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실천하는 감사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에 대하여 씁니다. 이 신비의 은총을 받은 수도자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사랑이 가득한 대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3

3 보나벤투라 신부는 1903년부터 1912년까지 바이에른 프란치스코회 관구장이었다. 중병을 앓은 뒤로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설립한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 명예 파수회에 헌신하였으며, 특히 소책자 보급에 힘썼다. 1932년에는 예수 성심과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 대형제회를 설립하였다.

최후의 만찬

최후의 만찬

감사의 법

예수님: 사랑하는 영혼아, 너는 이미 감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느냐?

영혼: 아니옵니다, 사랑하올 예수님. 청하오니 저를 가르쳐 주소서. 보소서, 저는 당신 사랑의 말씀에 주리고 목마르나이다.

예수님: 알아라, 착한 영혼아. 감사의 법은 이미 사람의 본성 안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많은 비신자들과 이교도들까지도 감사를 실천한다. 그렇다, 너는 짐승 가운데도 자기 은인에게 고마워하고 따르는 것이 있음을 이미 겪어 보았다. 반대로 본성의 법보다 자신의 정욕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선과 자비의 하느님이며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구약과 신약에서 여러 번, 분명한 말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의무를 일깨웠다. 나의 사랑은 거기에서 더 나아갔다. 나는 하느님께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법을 나의 모범으로도 가르쳤다. 나에 대하여 거듭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감사를 드리셨다」.

그러나 사랑하는 영혼아, 알아라. 나는 사랑의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도 하늘의 아버지께서 영혼들에게 아무 공로 없이 베풀어 주시는 모든 사랑과 은총과 자비에 대하여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다.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나는 감사하지 않는 모든 영혼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느님께 가장 거룩한 감사를 드려야 할 처지임을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는 영혼들을 위하여 보속과 배상의 감사를 하늘의 아버지께 드린다.

귀한 영혼아, 또한 명심하여라. 나는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어떤 의미로는 나 자신이, 선한 뜻으로 나를 찾아와 나에게 사랑을 드러내고 나를 위로하며 나를 기억하지 않는 영혼들을 대신하여 나에게 보속과 배상을 드리는 영혼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이 선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비추어 주고, 그들 안에 사랑과 은총을 늘려 주고, 유혹과 싸울 힘을 주고, 자기 소임을 다하도록 거룩한 기쁨으로 채워 주고, 십자가와 고난 중에 큰 인내와 힘을 주어 영원을 위한 공로가 되게 견뎌 낼 수 있게 함으로써 감사를 나타낸다. 이제 내가 너에게 묻는다, 사랑하는 영혼아. 너는 감사로 나를 따르겠느냐?

영혼: 기꺼이, 사랑으로 가득 차서 그렇게 하겠나이다. 그러나 사랑하올 예수님, 청하오니 제가 어떻게 감사를 실천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소서.

오 주님, 제가 아무리 감사드려도 모자라나이다.
제 모든 숨결이 당신께 감사드리게 하소서.
제 모든 심장의 고동이 당신께 감사드리게 하소서,
마지막 날 마지막 고동에 이르기까지.
그때에는 저의 모든 생각이
영원한 감사로, 감사, 감사로 당신께 감사드리리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엘 그레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엘 그레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실천

예수님: 사랑하는 영혼아, 네 삶 전체가 하느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깊이 마음에 새겨라. 숨 한 번 쉬는 것부터가 이미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보다 더 크고 더 귀한 것은 날마다 너에게 주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초자연적 은총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는 미사의 감사송에서 신자들에게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께 감사드리라고 권고하는데, 이는 마땅한 일이다.

영혼: 그러나 사랑하올 예수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자 할 때 저는 어떻게 말하여야 하나이까.

예수님: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가장 단순한 감사의 표현은 이러하다. 오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또는 하느님께 감사! 보라, 이 감사의 말만으로도 네 영혼은 하느님 보시기에 훨씬 더 마음에 들게 될 뿐 아니라, 여러 덕으로 장식된다. 감사의 덕을 실천하면서 믿음과 사랑과 겸손의 덕도 함께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의 행위를 할 때마다 너는 나에게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네가 조금 더 나아가 감사하며 하느님께 찬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나이다 하고 말하면, 앞서 말한 덕의 행위와 함께 하느님께 찬양도 드리는 것이다. 이로써 네 영혼은 다시 훨씬 더 풍요로워진다.

감사할 때 의지의 활동이 주도하게 하면 네 감사는 비할 데 없이 더 값져진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하느님께 찬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나이다. 이렇게 하면 너 혼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모든 영혼의 감사를 나에게 드리는 것이며, 동시에 나에게 감사하지 않는 모든 영혼을 대신하여 나에게 보속과 배상을 드리는 것이다. 이로써 너는 큰 몫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기쁨을 얻고, 영혼들 위에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 내린다.

영혼: 그러나 사랑하올 예수님, 당신과 성부와 성령께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드리고자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이까?

예수님: 너의 이 물음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말하노니, 그렇게 하는 수단은 의지의 활동이다. 이를 위하여 자주 다음의 의지의 행위를 일으켜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무한히,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양과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나이다. 이 영원의 감사 행위로 너는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한 감사를 나에게 한 번만이 아니라 무한히 드리는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에서 의지를 보시므로 너의 이 감사는 영원토록 이어지고 영원토록 작용할 것이다.

영혼: 오 영원한 사랑이시여, 당신은 얼마나 선하신지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에 대하여 저를 이토록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나이다.

오, 청하오니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도 말씀해 주소서.

사람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실천

예수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아, 잘 새겨라. 사람들에 대한 감사에도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가 있다. 세속의 사람들과 세상의 영에 지배당하는 모든 이들은 순전히 자연적인 동기에서 감사를 실천한다. 예를 들면 관례이기 때문에, 또는 감사하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보라, 이러한 감사는 순전히 자연적인 보상만을 가져온다. 나는 이 감사에 대하여 영혼들에게 여러 가지로 보상하여 주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서만이다. 그러나 네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는 네가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고 말한다면, 너는 초자연적 동기로 감사의 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보라, 이러한 감사의 행위에 나는 초자연적이며 영원한 선으로 상을 준다. 너는 성화 은총 안에서 자라고, 하늘을 위한 공로를 쌓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라는 감사는 비할 데 없이 더 값지고, 나에게 더 마음에 들며, 더 효과적이고, 더 큰 복을 가져온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에 대하여

예수님: 사랑하는 영혼아, 내가 이제 너에게 하는 말을 잘 새겨라. 네가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하고 감사하면 너는 나에게, 그 영혼이 너에게 베푼 선을 내가 갚아 주기를 청하는 것이다. 나는 너의 이 청을 매우 기쁘게 들어주고, 너에게 선을 베푼 영혼에게 그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풍성하게 보상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하고 감사할 때 너 자신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훨씬 더 크다. 너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로 너에게 선을 베푼 영혼에게 흔히 그 영혼이 너에게 해 준 것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웃 사랑의 행위로 너는 내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나는 그에 대하여 너에게 넘치도록 보상하겠다. 감사의 덕 외에도 너는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참된 신심과 슬기와 겸손의 덕을 실천한다. 이로써 너는 진심 어린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을 한 뒤마다 네 영혼이 훨씬 더 찬란한 덕의 장식으로 빛남을 알 수 있다. 또한 참된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을 한 뒤마다 너는 성화 은총이 여러 배로 늘어나고, 그 뒤에 네가 하는 모든 일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영적 가치를 지닌다. 사랑하는 영혼아, 이제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 네 영혼에 얼마나 큰 영적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알겠느냐?

하느님의 선물을 받을 자격을 사람에게 갖추어 주는 것으로 받은 은혜에 대하여 하느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라코니의 성 이냐시오
하느님, 저희에게 영혼과 육신으로 선을 베푼 모든 이에게 하늘과 땅의 양식이 결코 모자라지 않게 하소서.

영혼: 오 나의 선하신 예수님, 제가 그토록 자주 순전히 세속적인 감사에 만족하였기에 그토록 많은 손해를 입었음이 제 영혼을 얼마나 깊이 아프게 하나이까. 그러나 앞으로는 모든 경우에 언제나 오직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라고만 말하겠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이 결심을 축복하여 주소서.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에 대하여

예수님: 나는 큰 사랑으로 너의 청을 들어준다. 그러나 사랑하는 영혼아, 중도에서 멈추지 말고,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에 늘 알맞은 응답도 하여라. 그 응답은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이다. 무엇에 대하여 너에게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하고 말하는 영혼에게 네가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하고 대답하면, 두 영혼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히 내린다.

오, 사람들이 내 마음이 영혼들에게 은총과 축복과 은혜를 베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안다면, 그들은 나의 이 사랑에 응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과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로 두 영혼이 서로를 위하여 사랑으로 나에게 청함으로써 나에게 기쁨을 준다. 이 서로 간의 청으로 두 영혼은 영적인 자비의 업을 실천하는 것이다. 참으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두 영혼의 청을 들어주고, 갚음에도 축복에도 한계를 두지 않아, 그것들이 모든 점에서 모든 지상의 보상을 훨씬 뛰어넘게 한다. 그러나 두 영혼이 자신들의 청으로 스스로를 위하여 얻는 은총과 덕의 이득은 그보다 훨씬 더 값지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의 가치를 높이는 법

예수님: 사랑하는 영혼아, 네 마음이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과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로 나에게 많은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것을 내가 보니, 이 두 청의 효과를 어떻게 하면 훨씬 더 크게 할 수 있는지 네게 알려 주겠다.

영혼: 오 예수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에 대하여 당신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보다 더 큰 것이 또 있나이까?

예수님: 물론이다, 나의 아이야. 그 수단은 너의 자유로운 의지이다. 네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그저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 하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천 배로 갚아 주시기를」 하고 말할 수도 있다. 후자로 너는 나에게, 그 선물을 한 번만이 아니라 천 배로 갚아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배로 늘어난 청으로 너는 단순한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보다 나에게 훨씬 더 큰 기쁨을 준다. 그러므로 천 배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의 가치와 효력도 훨씬 더 크다. 이 강화된 청이 아무리 크고 나에게 마음에 든다 해도 거기에는 어떤 제한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에 「영원히」라는 말을 덧붙여라. 이 권고를 따르면 너는 나에게 기쁨을 줄 뿐 아니라, 나를 참으로 전능하고 영원히 선하며 자비로운 하느님으로 공경하는 것이다. 또한 네가 「하느님께서 영원히 갚아 주시기를」 하고 감사하는 영혼에게 너는 「하느님께서 천 배로 갚아 주시기를」 하고 감사할 때보다 비할 데 없이 더 큰 자비의 업을 베푸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영원히 축복해 주시기를」에 대하여도 전적으로 마찬가지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과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을 훨씬 더 귀하고, 값지고, 공로가 되게 할 수도 있다. 그 수단은 가장 큰 선한 지향이다.

그러므로 평생에 걸쳐, 언제나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영원히 갚아 주시기를」과 「하느님께서 영원히 축복해 주시기를」 하고 말하겠다는 의지의 행위를 일으켜라. 이 행위로 너는 나에게 한 번도 감사하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감사의 위대한 의지의 행위가 네 안에서 시들지 않도록, 나는 너에게 그것을 자주 새롭게 하라고 권한다. 또한 자비를 실천할 기회를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라. 그러면 너에게도 「하느님께서 영원히 갚아 주시기를」과 「하느님께서 영원히 축복해 주시기를」이 자주 돌아올 것이다. 모든 영혼이 서로 이렇게 행한다면, 사랑이 마음마다 훨씬 더 자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축복도 훨씬 더 널리 펼쳐져 점점 더 큰 영적 효력을 낼 것이다.

사랑하는 영혼아, 너는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과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의 높은 가치에 대하여 배웠으니, 이 은총의 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들도 그것을 알게 되도록 힘써라. 그렇게 하면 너의 가르침에서 나오는 모든 열매에 너도 몫을 가지게 된다.4

기쁜 마음으로,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콜로 1,12

4 Vergelt's Gott, 마찬가지로 26쪽과 27쪽.

하느님의 인사

예수님: 감사할 때와 마찬가지로 인사할 때도 그러하다. 서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은 영혼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다. 그러나 진심으로 서로 「하느님의 인사를 받으십시오」 하고 인사하는 것은 인사하는 이들에게 큰 이익, 그렇다, 영원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나는 이 인사에 담긴 청을 기꺼이 들어주고, 그들에게 나의 사랑과 은총을 기울임으로써 그 영혼들에게 인사한다.

그러나 「아베 마리아」 또는 「찬미예수」이라는 인사는 비할 데 없이 더 큰 복을 가져온다.

사랑하는 영혼아, 생각해 보아라. 은총의 상태에 있는 영혼의 「하느님께서 갚아 주시기를」이나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이 이미 영원을 위하여 그토록 큰 영적 이득을 가져온다면, 순종과 사랑과 자비와 자기 부정의 업, 거룩한 성사들을 받는 일, 그리고 십자가와 고난의 인내로운 감수에 대한 상급은 얼마나 비할 데 없이 더 크겠느냐. 특히 이러한 업을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나에게 봉헌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오 사랑하는 영혼아, 그러므로 열심을 내어 선을 행할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라.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를 도와 영적으로 풍요롭게 해 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아라.

영혼: 오 선하신 구세주시여,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영원히 당신께 찬양과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리나이다. 당신께서 지극히 크신 선하심과 자비로 저를 이토록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나이다. 저는 당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기로 굳게 결심하였나이다. 오, 이를 위한 당신의 은총을 제게 베풀어 주소서.

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시여, 당신의 모든 사랑과 은총과 자비에 대하여 저희가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감사드리나이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모든 성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필리 4,21

선한 지향을 잊지 마라

독일의 신비가 메히틸트 탈러-쇤베르트(1868-1919)는 이렇게 씁니다. 오늘 세상을 떠난 폴리카르프 신부가 나에게 왔다. 그는 연옥에서 구해 준 데 대한 감사로 이렇게 말하였다. 「단식하고,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고, 자기 부정과 순종을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는 구원받을 것이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결합하여 그것을 하겠다는 선한 지향을 일으켜라. 그러면 너는 거룩하고 완전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다시 한 시간만이라도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선한 지향’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에 대하여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내가 지금처럼 모든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오직 이렇게만 설교하였을 것이다. 「선한 지향을 잊지 마라!

끊임없는 선한 지향으로 사람은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통회를 배우고,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더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불타는 사랑에 이른다.

끊임없는 선한 지향으로 너는 거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네 기도에 대한 감사로 너에게 말한다!」5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가 하려는 모든 일과 봉헌하려는 모든 것과 겪으려는 모든 고통을, 예수님과 마리아님의 공로와 하나로 결합하여, 삼중 교회 전체의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이로써 영원토록 작용하며 계속 작용하고자 하는 뜻으로 봉헌하나이다. 아멘. 알베르트 드렉셀 교수

5 Die Vertraute der Engel, Leben der Mystikerin Mechthild Thaller-Schönwerth, Jestetten 1992.

우리 양심을 비추는 등불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 따르면, 감사는 훌륭하고 열매 맺는 양심 성찰을 위한 없어서는 안 될 수단입니다. 영혼의 방들이 날마다 실천하는 감사로 환히 비추어지는 곳에서는, 결국 자기애에서 나오는 불쾌함과 불만이라는 좀먹는 움직임이 우리 영혼에서 우세해질 수 없습니다.

감사의 등불로 이 「기쁨의 도둑」들을 찾아낼 수 있고, 알맞은 해독제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불만스러우면서 동시에 감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날마다 감사하며 동의하는 실천은 모든 덕의 실천이며 증명입니다.

감사의 어머니는 겸손입니다. 마치 교만이 배은망덕을 낳듯이, 겸손은 감사에 생명을 줍니다. 감사의 자매들은 기쁨과 만족인데, 그들은 즐겁게 감사와 함께 삶을 걸어가고 다른 많은 덕들과 동행합니다.6

하루 동안 여러 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네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는 습관을 들여라.

사람들이 너를 멸시하였기 때문에, 네가 필요한 것을 가졌기 때문에, 또는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분께서 당신 어머니, 곧 너의 어머니를 그토록 아름답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해와 달과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저 사람은 그토록 말솜씨 있게, 너는 그토록 말이 둔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드려라.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이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6 참조: Geist und Leben, Zeitschrift für Aszese und Mystik, Würzburg 1956, 4호, 286쪽 이하.

강력한 치료제

하느님께서 당신 피조물의 감사를 그토록 기뻐하시므로, 우리 이웃을 풍요롭게도 하는 이 매력적인 덕은 우리에게 마음에 새겨진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영혼을 이와 같이 상쾌하게 하고, 치유하고, 굳세게 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는 약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감사는 악을 선으로 갚고 우리에게 호의를 갖지 않은 모든 이를 용서하도록 우리를 마음 쓰게 함으로써 온갖 부정적인 영향을 약화시킵니다.7

삶의 매 순간 감사하는 은총은, 그 순간이 기쁨의 모습을 하고 있든 아픔의 모습을 하고 있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믿음의 신뢰의 열매입니다. (로마 8,28) 감사는 기쁘고 만족하는 사람의 비밀이며, 이는 다음 이야기가 잘 보여 줍니다.

활기찬 이탈리아 사람들의 무리 가운데서 한 젊은 여인이, 얼굴에서 유난히 깊은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작은 노사제를 보고 갑자기 몹시 마음이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여쭈어 죄송합니다만, 신부님은 어쩌면 그렇게 기쁨이 가득하십니까? 특별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오, 아니오, 오히려 나의 작은 비밀이지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알려 드리리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습니다. 「나는 아흔다섯 살입니다. 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일에도 끊임없이 불평하는 것을 슬프게 보았고, 그것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나는 또 예수님께서 그것으로 슬퍼하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내 삶의 백 년 동안 결코 불평하지 않겠다고, 그와 반대로 좋은 날에나 나쁜 날에나 모든 일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겠다고, 그리고 생명의 선물을 언제나 공경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해야겠군요, 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내가 삶을 찬양하며 보낸 이 모든 세월 동안 악은 나에게 아무 해도 끼칠 수 없었고, 나는 그렇게 모든 악마를 피해 올 수 있었습니다!」

거의 백 살이 된 이 사제는 자신의 삶으로, 감사가 그를 기쁜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감사하는 기쁨은 자신을 나누고자 하며, 선한 행동을 낳습니다. 내가 이미 이렇게 많이 받았다면, 그것을 기꺼이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도 지고 가야 할 것이 적지 않은데도 만족과 어떤 밝은 평온을 지니고 옵니다.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그저 좋아하고, 이는 양쪽의 행복을 늘려 줍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쉽게 불평하고 비판하는데, 이는 불만을 더욱 키울 뿐이고 악을 더 크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감사로 채워져 있으면, 거기에는 질투와 시기와 복수와 앙심과 분노와 인색과 낙담, 또는 심지어 절망이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주 시달리는 이 악습들을 우리 안에서 체험할 때, 감사는 가장 좋은 치료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열쇠입니다.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를 불러라, 내가 너희 청을 들어주겠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의사이며 약사이신 예수님」 그림의 글귀

7 참조: Geist und Leben.

8 참조: Triumph des Herzens, Dankbarkeit der Schlüssel zum Glück, Nr. 122.

약사이신 그리스도

약사이신 그리스도

거룩한 미사의 은총의 강물

예수님: 사랑하는 영혼아, 깊이 새겨라. 거룩한 미사는 내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늘 아버지께 바친 제사와 같은 제사이다. 십자가의 제사처럼 미사의 제사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제사이다. 내가, 아버지와 성령과 같은 하느님으로서, 미사마다 나를 하늘 아버지께 봉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고 참례하는 것은 모든 선행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 해가 모든 별을 합친 것보다 더 밝게 빛나고 땅에 더 유익하듯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고 참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모든 선행을 합친 것보다 더 값지다. 모든 선행은 사람의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룩한 미사에서 너는 나의 몸과 피, 그렇다, 하느님의 외아들인 나 자신을 봉헌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영혼아, 할 수 있는 한 자주 미사에 참례하여라.

거룩한 미사는 가장 숭고한 흠숭과 찬미의 제사이다. 하느님은 영원하고 무한한 위엄이시며, 모든 완전함의 총체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다. 그분께는 무한한 경의와 찬양과 찬미가 마땅하다. 그러나 어떤 피조물도, 나의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조차도, 자기 힘만으로는 하느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만큼 그분을 흠숭하고 찬양하고 찬미할 수 없다. 오직 하느님의 아들인 나만이 신성을 합당하게 공경하고 찬양하고 찬미할 수 있으며, 나는 미사마다 하느님께 마땅한 무한한 흠숭과 찬양과 찬미를 드린다.

사랑하는 영혼아, 너도 거룩한 미사의 제사를 통하여, 올바른 지향으로 참례할 때마다 신적 위엄께 무한한 경의와 흠숭과 찬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다. 오, 기뻐하며 하느님께 거룩한 미사의 흠숭과 찬미의 제사를 열심히 봉헌하여라. 거룩한 미사는 가장 완전한 감사의 제사이다.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너에게 나누어 주시는 헤아릴 수 없는 은총과 은혜에 대하여 너는 하느님께 마땅한 만큼 감사드릴 수 없다. 네가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가능하게 하였다. 모든 거룩한 미사에서 나는 가장 높은 감사의 마음으로 나를 완전한 감사의 제물로 나의 하늘 아버지께 봉헌한다. 나와 함께, 나를 통하여 너도, 사랑하는 영혼아, 감사의 마음으로 참례하는 모든 거룩한 미사에서 완전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나와 나의 성체의 제사를 통하여 너는 그토록 부유하게 되어,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로 하늘 아버지께 말로 다 할 수 없이 높은 답례의 선물을 봉헌할 수 있다. 그러나 감사는 또한 찬란한 덕이다. 그러므로 너는 거룩한 미사 중에만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거룩한 미사는 충분하고도 남는 보속과 속죄의 제사이다. 죄는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모욕이다. 어떤 사람도 단 하나의 죄에 대하여서조차 완전한 보속과 속죄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인류를 불쌍히 여겨 십자가 나무 위에서 나를 보속과 속죄로 하늘 아버지께 봉헌하였다. 이 보속과 속죄의 제사를 나는 거룩한 미사에서 계속한다. […]

자애로우신 주 예수님, 참된 펠리칸이시여, 제가 잘못한 것을 당신 피로 씻어 주소서.
이 피는 한 방울만으로도 구원에 넉넉하니, 땅이 일찍이 짊어진 모든 죄악을 없애 주나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속죄의 제사로서 거룩한 미사의 제사는, 네가 죄를 용서받은 뒤에 지상에서나 연옥에서 치러야 할 죄의 벌을 면해 준다.

죄의 벌의 이 면제는 네가 죄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로울수록 더 완전하다. 거룩한 미사의 속죄의 제사를 너는 연옥 영혼들에게 돌릴 수도 있으며, 그들을 위하여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거나 그들을 위하여 미사를 드리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봉사를 그들에게 해 줄 수는 없다.

거룩한 미사의 시간은 참으로 황금의 시간이다. 그것으로 네 하루의 일 전체가 영원한 가치를 지닌 금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너의 열망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너와 네 하루의 일 위에도 거룩한 미사의 효력을 쏟아 부어 주신다.

거룩한 미사는, 사랑하는 영혼아, 너에게 많은 현세적 은혜도 얻어 준다. 네 직업에 대한 축복, 위로, 용기, 곤경 중의 도움. 그러나 너는 무엇이 네 구원에 이로운지 모르므로, 현세적인 청에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라면」, 「구원에 도움이 된다면」 하는 조건을 덧붙여라. 어쨌든 확실한 것은, 네가 거룩한 미사 중에 네 청을 나의 전구와 하나로 결합하면 모든 청에서 가장 확실하게 들어 주심을 얻는다는 것이다. 나의 제사를 통하여 그 청들이 더 확실하게, 더 일찍,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거룩한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너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서 자라고, 그러므로 네가 하루 동안 하는 모든 일은 네가 거룩한 미사에 참례하지 않았을 때보다 비할 데 없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네가 정말로 거룩한 미사에 참례할 수 없다면, 적어도 열망과 갈망으로 미사에 참여하여라. 그렇다, 나는 너에게, 모든 거룩한 미사에 날마다 참여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지라고 권한다.9

오 예수님, 당신의 죽음과 거룩한 피로 죄인들을 회개시키시고, 임종하는 이들을 구하시며, 연옥의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가정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9 보나벤투라 블라트만 신부(OFM) 저, Gnadenströme, Imprimatur: August Vindel, 1934년 5월 4일 vic. Gen.(총대리) Dr. Eberle.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예수 성심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

1675년 6월 성체 축일 팔일 축제 동안, 예수님께서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당신의 하느님의 성심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아끼지 않고 온전히 내어주고 소진하여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 이 성심을 보아라. 그 보답으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 사랑의 성사 안에서 나에게 가해지는 냉담과 무시를 통해 오직 배은망덕만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나에게 봉헌된 영혼들조차 나에게 이와 같이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성체 축일 팔일 축제 후 첫 번째 금요일을 나의 지극히 거룩한 성심을 공경하는 특별한 축일로 정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 날에 영성체를 하고, 지극히 거룩한 제대 성사[…]에 가해진 모욕을 보속하기 위해 장엄한 사죄를 통해 나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사랑의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거듭 찾아뵙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림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성심을 위로하고 너무나 많은 영혼의 배은망덕과 무관심에 대하여 그분께 보속을 드립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맡기신 모든 이를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받습니다. 감사는 예수 성심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께 영광과 사랑과 감사가 있으소서! 대사 기도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사랑의 신비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뵙고 성사로 영할 기회를 가지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간절한 열망으로 온 세상의 모든 감실 안에 계신 그분께 인사드리고, 흠숭하며, 사랑의 감사로 영적인 방식으로 그분을 모실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친언니 셀린에게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가장 많은 은총을 끌어당기는 것은 감사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은혜 하나에 감사드리면 그분은 감동하시어 서둘러 우리에게 열 가지를 더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 다음 우리가 같은 진심으로 그분께 다시 감사드린다면, 은총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나겠습니까!

나 자신도 이를 체험하였습니다. 시험해 보세요, 그러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주시는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감사는 끝이 없고, 나는 그것을 천 가지 방법으로 그분께 드러냅니다.

영혼이 겸손하고 낮을수록 그만큼 더 감사하며, 또한 고통도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믿음에서 더욱 굳세어집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제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총, 특히 저를 고통의 불시련을 거치게 하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나이다. 마지막 날, 당신께서 십자가의 왕홀을 드시고 계실 때 기쁨으로 당신을 바라보리이다. 이토록 값진 십자가를 제 몫으로 주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으니, 저는 하늘에서 당신을 닮게 되기를, 그리고 영광스럽게 된 제 몸에서 당신 수난의 거룩한 성흔이 빛나는 것을 보기를 희망하나이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하여 저희는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뜻으로써 무한히 또 쉼 없이,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성심을, 그분의 모든 사랑과 모든 고통과 지극히 귀한 보혈과 모든 공로와 그분의 온전한 성체적 삶과 활동과 함께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이는 저희 모든 죄에 대한 보속과 속죄가 되고, 당신의 모든 거룩한 뜻의 영광을 위함이나이다. 보나벤투라 블라트만 신부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 시편 116,12-13
내 주님의 피로 붉게 물든 그 잔을 내가 들고, 기쁜 감사 속에 내 피를 거룩한 제물 어린양의 피와 섞으면, 그 피는 그분의 무한하심에 참여하게 되어 아버지께 더없이 큰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고통은 아버지의 영광을 싣고 있는 소식이 됩니다.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 엘리사벳을 찾아가신 마리아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 엘리사벳을 찾아가신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와 함께 감사드리기

온 교회는 날마다 하느님의 어머니와 함께 마리아의 노래의 위대한 찬미를 노래하고 바침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을 찬양하고 온 인류의 이름으로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때 우리가 마리아께서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시도록 맡겨 드릴수록,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은총과 공로에 우리가 더 많이 참여하게 해 주십니다. 그 은총과 공로는 너무나 크고 숭고하여, 은총을 받은 수녀원장 아그레다의 마리아 수녀는 이렇게 씁니다.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의 보물 창고요 「큰 신비」의 성소이신 마리아만이, 당신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온 인류의 이름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경과 감사를 그분께 드렸다.10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루카 1,46-55

10 아그레다의 마리아 저, Leben der jungfräulichen Gottesmutter Maria, Jestetten 1982, 제2권, 144쪽.

천사들이 복된 이들을 천국의 문으로 인도합니다 (한스 멤링, 「최후의 심판」)

죽음,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

순간의 은총

예수님: 사랑하는 영혼아, 너는 이미 한 순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느냐?

영혼: 아니옵니다, 나의 선하신 예수님. 오, 청하오니 그것에 대하여 저를 가르쳐 주소서!

예수님: 그러면 내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전하는 것을 마음에 새겨라. 사랑하는 영혼아, 매 순간 너를 위하여 은총도 시련도 준비되어 있다. 둘은 말하자면 언제나 네 문 앞에 서 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어떤 고난이나 시련을 너에게 오게 하기 전에, 언제나 나의 사랑과 은총으로 먼저 간다. 물론 너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너는 은총 대신 고난만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은총은 영혼에게 깊은 내면으로 전달되는 반면 고난과 시련은 대개 밖에서 영혼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특히 말해 둔다. 나는 적지 않게 사람들을 나의 도구로 사용하여 너를 위하여 정해진 고난과 시련을 너에게 가한다. 또는 네가 한숨짓는 인간의 약함과 질병을 허락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고난이 하느님의 큰 은총의 선물일 뿐 아니라, 이 모든 고난과 시련 아래에 가장 귀한 은총이 숨어 있음을 너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영혼아, 나는 너에게 큰 선을 주었으니, 그것은 깨달음이다. 이것을 사용하면 너는 모든 고난과 시련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네가 옳다고 깨닫는 모든 일에 협력할 수 있다. 깨달음과 올바른 뜻으로 견딘 고난을 통하여 이것들은 은총이 되고, 언제나 활용된 은총을 통하여 너는 나의 가장 거룩한 뜻과 깊이 결합하도록 인도될 것이다. 매 순간은 하나의 생각이나 의지의 행위, 결심, 자신을 바치는 일, 또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일을 그 안에 품을 수 있다. 그렇다, 영혼 안에서는 두 힘이 자주 다투고 싸우며, 영혼이 선이나 악을 결정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한 순간에 삼십 년, 오십 년, 팔십 년의 삶이 이 시간에 대하여 마감된다. 나 자신이 그 영혼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도 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 영혼이 하늘에서 영원히 행복할지, 지옥에서 영원히 불행하고 저주받을지가 영혼에게 알려지는 것도 또 한 순간이다.

온 삶은 순간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누구도 자기의 평생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순간을 모두 셀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모두를 아신다. 너도 언젠가 모든 순간의 사용에 대하여 하느님께 셈을 드려야 한다. 그러나 은총에 협력하였을 뿐 아니라 고난과 시련을 모두 영원한 공로가 되도록 견뎌 낸 영혼들은 행복하고 복되다.

순간들의 활용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테살 5,17) 기도는 네가 모든 순간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주된 수단이다. 네가 언제나 기도한다면, 곧 네가 모든 일에 선한 지향을 가지고 나와 결합한다면, 네가 무엇을 하든, 일하든, 고난을 겪든 모든 것이 너에게 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영혼들에게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수단은 화살기도이다. 보라, 사랑하는 영혼아, 은총의 순간에 화살기도를 바치면 그로써 은총의 유입이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네가 고난과 시련 중에 있을 때 화살기도를 바치면, 화살기도를 통하여 모든 고난과 시련이 큰 은총의 샘이 된다. 심장과 맥박이 끊임없이 뛰듯이, 너도 끊임없이 마음의 기도를 가꾸어야 한다.

그러나 네가 너무 많은 일에 매여 있는 때에는, 적어도 의지가 작용하게 하여라. 사람의 삶에서 모든 순간이 너무나 귀하여 어느 하나도 사라지거나 쓰이지 않은 채 남아서는 안 되므로, 너는 특히 일하는 시간에 의지가 활동하게 하여야 하고, 오늘 하루의 현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뜻으로 앞서서도 일하고자 해야 한다. 오, 의지의 이 영적 활동은 너 자신을 위해서도, 모든 영혼을 위해서도, 네가 모든 사람의 모든 순간을 거룩하게 하여 나의 뜻에 따라 나에게 드리고 봉헌하고자 하며 뜻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한한 영적 열매가 솟아나고, 시간 안에서 온 영원을 위하여 참으로 위대한 일이 이루어지는 매우 큰 영적 일터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루카 12,49)

보라, 그렇게 나는 영혼들이 모두 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자기 삶을 나의 봉사에 내놓고, 모든 순간을 은총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영혼은 극히 드물다. 나의 종이라고 일컫는 영혼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이가 이것을 소홀히 한다. 모든 곳에서처럼 이 점에서도 너는 보속과 배상으로 나설 수 있다. 그것은 네가 모든 일을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하고, 하고자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너는 이것을 대범한 정도를 넘어 아주 너그러울 만큼 폭넓게 해야 한다. 보라, 사랑의 행위를 일으키고, 여기저기서 자신을 이기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의 초대에 따르거나 타락한 본성에 굴복하는 데에는 한 순간이면 족하다. 이 모든 것을 너는 여러 동기에서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그에 대하여 너에게 영원히 상을 주도록 하기 위해서, 또는 사랑을 행동으로 나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또는 내가 너로 하여금 나의 영원한 활동에 참여하게 하도록, 또는 모든 영혼의 이름으로, 모든 영혼을 위하여, 또는 하느님의 뜻과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기 위해서이다. 네 동기가 숭고하고 넓을수록 너는 그만큼 더 너그럽게 행동하는 것이다.11

11 보나벤투라 블라트만 신부(OFM) 저, Leitsterne zum Himmel, Imprimatur: Augustae Vindel, 1934년 6월 6일 vic. gen.(총대리) Dr. Eberle.

대감사 호칭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감사송 서문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님, 저희 말을 들으소서!
 그리스도님, 저희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늘에 계신 성부 하느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세상의 구원자이신 성자 하느님, ...
성령 하느님,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한 분이신 하느님, ...

거룩하신 마리아님, 천주의 성모님, 감사의 합창을 앞서 이끌어 주소서!

빛과 생명과 모든 창조물에 대하여, 오 하느님, 저희가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구유와 십자가와 부활의 아침에 대하여, ...
하늘의 불에서 내려온 일곱 불꽃의 비둘기에 대하여, ...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알려 주심에 대하여, ...
하늘의 모후,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이시며 저희 어머니이신 분에 대하여, ...
저희 머리 위에 부어진 세례의 정화하는 물에 대하여, ...
저희를 당신의 교회로 인도한 이에 대하여, ...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과 친구들에 대하여, ...
조국과 정부와 모국어에 대하여, ...
일용할 양식과 저희 집과 하루의 일에 대하여, ...
위로와 행복과 위험 중의 보호에 대하여, ...
당신께서 저희에게 행하게 하신 참회의 업에 대하여, ...
쓰지만 힘을 북돋우는 고난의 잔에 대하여, ...
성령의 투사들의 표지인 견진의 은총에 대하여, ...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제사에 대하여, ...
하늘의 빵으로 날마다 양육해 주심에 대하여, ...
제대 위에서 저희 가운데 머무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
고해소에서 받는 힘에 대하여, ...
병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그들을 구원하는 성유에 대하여, ...
당신을 부를 수 있는 사제의 권능에 대하여, ...
혼인 성약의 존엄과 영예와 품위에 대하여, ...
저희 모두를 일으켜 세우고 모아 주는 교회에 대하여, ...
하늘나라의 열쇠를 손에 쥔 베드로에 대하여, ...
당신의 왕적 목자직과 사제직에 대하여, ...
거룩한 교회라는 나무에 꽃피는 수도회의 가지들에 대하여, ...
가장 완전한 믿음의 증거에 대하여, ...
당신을 얼굴과 얼굴로 뵙게 되리라는 희망에 대하여, ...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사랑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하여, ...
지상의 싸움에서 받는 천사들의 도움에 대하여, ...
성인들의 활동에서 길어 내는 용기에 대하여, ...
당신 어좌 앞에서 전구하는 모든 성인에 대하여, ...
동정 마리아의 티 없는 순결에 대하여, ...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
당신 나라의 모든 영광스러운 승리에 대하여, ...
교회의 모든 빛나는 축일에 대하여, ...
죽은 이들을 위한 저희 기도를 들어 주심에 대하여, ...
저희에게 이성을 갖춘 불멸의 영혼을 주셨음에 대하여, ...
저희 의지를 자유로 존귀하게 하셨음에 대하여, ...
저희에게 선의를 주셨음에 대하여, ...
저희가 하는 가장 작은 일에도 영원한 상급을 약속해 주셨음에 대하여, ...
저희를 일생 동안 이끄는 사랑 가득한 섭리에 대하여, ...
어두운 밤에 저희를 비춘 빛에 대하여, ...
저희 발밑의 땅이 흔들릴 때 저희를 붙들어 준 손에 대하여, ...
저희와 함께 아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하여, ...
벌 대신 베푸신 은총에 대하여, ...
저희가 언젠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리라는 것에 대하여, ...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것에 대하여, ...
그분께서 선한 이들을 의롭게 심판하시리라는 것에 대하여, ...
그분께서 교만한 이들을 무릎 꿇게 하시리라는 것에 대하여, ...
최후 심판의 저녁에 저희가 환호하며 하늘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에 대하여, ...

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여, (세 번)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주님, 저희 기도를 들어 주소서.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합시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나이다. 겸손히 청하오니, 저희가 이 땅에서 시작하는 감사를 하늘에서 완성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성령과 하나 되시어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는 당신의 아드님, 저희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12

12 대감사 호칭 기도는 덴마크의 개종자이자 가톨릭 사제인 야콥 올릭의 작품. Imprimatur: Hafniae(코펜하겐), 1923년 4월 7일, † 요제프 브렘스, O. Praem., Episc. Roskildensis Vicarius Apostolicus Daniae (로스킬레 주교, 덴마크 대리 교구장).

구걸 자루와 묵주를 든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구걸 자루와 묵주를 든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데오 그라시아스 수사

감사하는 마음의 소박함이라는 프란치스코회의 이상은 카푸친회의 성 펠릭스 수사(칸탈리체의 펠릭스, 1515-1587)의 삶에서 각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드러납니다. 읽기와 쓰기를 끝내 배우지 못한 펠릭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양과 염소를 치면서 손수 만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머슴으로 남의 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 쟁기질을 하다가 황소 두 마리가 놀라 쟁기를 끌고 그의 위로 내달렸습니다. 기적처럼 다치지 않은 펠릭스는 이 일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뚜렷이 느끼고 가까운 카푸친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이 겸손한 문맹자에게 십자가는 너무나도 교과서가 되어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책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하신 모든 선에 대한 묵상은 그에게 감사와 기쁨의 끊임없는 샘이요 가장 깊은 비밀이었습니다. 그는 즐겨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는 글자 여섯 개를 공부한다. 붉은 것 다섯 개와 흰 것 한 개. 붉은 것은 구세주의 성흔이고, 흰 것은 마리아이다. 그는 마리아를 어린이처럼 사랑하였습니다.13

그가 수도원의 탁발 수사로서 로마를 돌며 얻은 모든 것에 대하여 건넨 다정한 「Deo gratias – 하느님께 감사!」는 민간에서 그에게 데오 그라시아스 수사라는 이름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겸손한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를 하느님께로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확신하였지만, 내면에서 하느님 곁에 머무르기 위하여 눈을 내리뜨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로마의 거리를 걸었고, 궁전의 문과 가난한 이들의 거처의 문을 가리지 않고 끈기 있게 두드렸으며, 언제나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주는 것에 만족하였습니다. 조롱과 거친 욕설에도 그는 미소를 지으며 진심 어린 「하느님께 감사 – Deo gratias!」 하고 응답하였습니다. 펠릭스 수사는 모든 것에서, 사람들의 자선에서만이 아니라 바로 굴욕에서 자기와 다른 이들의 성화에 이바지하는 하느님 손의 선물을 보았습니다. 이 카푸친 수사는 사로잡을 만큼 어린이처럼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쳐 준 많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외에도 도시의 아이들이 그의 특별한 귀염둥이였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자기 둘레에 모으고 「Deo gratias!」를 따라 하게 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이는 말하자면 아이들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끊임없이 감사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우정과 영혼의 친화가 그를 로마의 사도이자 오라토리오회의 창설자인 성 필립보 네리와 이어 주었습니다.

펠릭스 수사가 모아 온 「보물」을 들고 지쳐 수도원으로 돌아오면 빵 껍질 몇 조각과 약간의 포도주로 만족하였습니다. 밤에 형제들이 잠들면 그는 홀로 수도원 성당에 가서 은인들의 지향과 로마 시민 전체를 간절한 기도로 하느님 앞에 올려 드렸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며,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전구의 기도와 깊은 묵상 속에서 한 시간 또 한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펠릭스 수사가 신실하게, 유례없는 겸손으로 자기 소임을 수행한 사십 년 동안 로마 사람들은 그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 마침내 그들에게 그는 도시의 풍경에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칠 년 동안 그는 자주 심한 복통에 시달렸으나 이 고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장미이고, 꽃이다.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펠릭스 수사는 갑자기 놀란 「오!」 소리와 함께 황홀경에 빠져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성모님께서 천사들을 동반하여 여기에 계신다. 이튿날, 곧 성령 강림 월요일인 1587년 5월 18일에 병자성사를 받은 뒤, 이 카푸친 수사는 점점 더 큰 소리로 세 번 Deo gratias! 하고 외치고는 마치 잠들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14

어디서나, 모든 장소에서, 모든 시간과 모든 때에, 지극히 높으시고 가장 숭고하시며 영원하신 하느님, 삼위일체이시며 하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당신을 믿고 당신께 희망을 두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구원자이신 그분을 저희는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13 펠릭스에게 구걸 다닐 때 자주 「Deo gratias」를 되풀이하라는 기발한 조언을 한 적이 있는 루푸스 수사는 어느 밤 펠릭스 수사가 높은 제대 앞에 엎드려 하느님의 어머니께 간절히 청하는 것을 보았다. 「당신의 신적인 아기를 제게 잠시 빌려 주십시오.」 갑자기 제대 위의 성모상이 살아나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그에게 몸을 숙이고 작은 아드님을 펠릭스의 팔에 안겨 주셨으며, 펠릭스는 복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분을 가슴에 꼭 안았다.

14 주요 출처: 에딜베르트 린트너 신부(OFM Cap) 저, Die Heiligen des Kapuzinerordens, Verlag der Bayrischen Kapuziner, Altötting.

감사드리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드리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시편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