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종말의 싸움에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의 힘
예수님, 모든 선의 샘이시여, 모든 기쁨의 희망의 힘이시여, 당신은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이시며 마음의 가장 깊은 열정이시나이다.
예수님, 참회하는 이들이 희망을 두는 분이시여, 애쓰는 이에게 얼마나 자애로우시며 당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얼마나 좋으신지요. 당신을 찾아낸 이는 무엇을 맛보겠나이까?
예수님, 당신을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참된 생명의 태양이시여, 눈물 속에서도 당신을 찾으며 하늘의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에게 그러하시나이다.
예수님, 저희 주님이시며 구원자시여, 당신의 빛이 저희에게 새날을 주시니, 세상은 당신 안에 새로이 안전하고 어둠은 빛 앞에 스러졌나이다.
예수님, 동정인 어머니의 싹이시여, 저희 사랑의 아름다운 광채시여, 당신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이 있으소서, 언젠가 복된 이들의 나라에서 온전히. 아멘.
예수 성명 축일 아침기도 찬미가에서
마리아 사제·평신도 운동의 이 소책자는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의 힘을 소개합니다. 수많은 성인들의 증언, 일상에서 이 이름을 부르고 흠숭하는 것, 이 이름의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힘, 그리고 성 요한의 묵시록이 묘사하는 종말의 싸움에서 이 이름이 지니는 의미를 다룹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림
추천사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루카 1,31-32
예수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친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둘째 위격께서 당신의 인성 안에서 불리기를 원하신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전해졌으니, 이 땅에서 처음으로 대천사 가브리엘의 입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은 강생의 뜻과 목적을 표현합니다. 곧 구원입니다. 히브리어로 예수는 구원자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은 또한 골고타의 십자가 나무 위에 쓰였고, 그때부터 모든 십자가와 십자가상을 장식합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 2,8-11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은총의 삶 안에서 하느님 안의 행복이며, 언젠가는 하느님을 뵙는 지복직관 안의 행복입니다. 예언자 하바쿡서에는 라틴어 불가타 번역본에 이 아름다운 말씀이 있습니다. Exultabo in Deo Iesu meo, (하바 3,18) 즉 나는 하느님, 나의 예수(= 구원자) 안에서 즐거워한다. 우리의 영원한 행복은 하느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 안에서, 곧 그분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새 이름을 받을 것이며(참조: 묵시 2,17), 구원받은 이들의 이마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적힐 것입니다(참조: 묵시 3,12). 곧 예수님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입니다(참조: 묵시 14,1). 구약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창조한 이들, 내가 빚어 만든 이들 (이사 43,7) 하느님께서 택받은 이들, 곧 끝내 구원받을 이들을 빚어 만드신 이 이름은 우리 구원자의 이름입니다. 성 바오로는 새 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새로워진다고 가르칩니다(참조: 골로 3,10).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구원, 곧 그분의 이름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새로 회심한 바오로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려야 한다. (사도 9,15) 실제로 하느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참조: 1요한 3,23).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사도 4,1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누구나 구원받습니다(참조: 사도 2,21).
그리스도인의 과업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입니다(참조: 1베드 4,16). 교회 초기의 전승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3세기 초)는 그리스도인의 존엄에 대하여 이렇게 감동적으로 전해 줍니다.
모든 참된 신자는 고귀하고 하느님을 닮았으며, 왕관처럼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합니다. Quis div. salv. 36,1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과업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참조: 마태 10,32). 그리고 모든 혀가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필리 2,11). 이 고백 때문에 교회와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르 13,13) 그럼에도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모욕을 당하는 것이 기쁨이어야 합니다(사도 5,41).
참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이 시편의 말씀에 따라 인도되어야 합니다. 주님, 저희에게가 아니라 저희에게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시편 115,1)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이 세상의 삶을 떠날 때 마음과 입으로 가장 거룩하고 가장 힘 있고 가장 감미로운 모든 이름, 곧 예수라는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또는 거룩한 필리포 네리와 함께 외칠 것입니다. 나의 예수님! 예수님, 저의 예수님이 되어 주소서!
2021년 1월 25일, 사도 바오로의 회심 축일
+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 아스타나 성모 마리아 대교구 보좌 주교
성가정: 마리아, 요셉과 아기 예수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의 힘을 증언하는 이들
교회의 시작부터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 안에 숨겨진 헤아릴 수 없는 힘과 지혜는 기이하고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 신적 이름의 신비를 가장 깊이 꿰뚫은 이들은 분명 천주의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외아드님을 맡기시어, 구원자의 마음에서 나오는 은총의 흐름을 온 인류에게 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 같은 신뢰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사랑하는 선물을 그들의 손에서 청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끊임없는 마음의 기도로 가는 길에서 우리의 가장 확실한 길잡이이기 때문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는 예수라는 이름을 아주 즐겨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사도들이 서로 누가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지 다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그분은 어머니의 집 문간에 서 있던 네 살짜리 소년을 불러 가까이 오게 하시고, 그 아이의 손을 잡으시어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 18,3 이하)
이 소년 이냐시오는 훗날 구세주께서 그를 부르셨던 그 자리에 자주 가서, 그곳 땅에 입 맞추며 동무들에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보아라, 바로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팔에 안아 주셨다.
이냐시오는 자라서 사제가 되었고, 이어서 대도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전에 성 베드로가 칠 년 동안 사목하였습니다. 안티오키아는 곧 그리스도교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가 원정길에 안티오키아에 와서 우상의 신전들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총독에게 신전들이 비어 있는 것이 누구 탓이냐고 물었습니다. 총독은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주교 이냐시오가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연로한 주교를 자기 앞으로 불러 물었습니다. 이 도시에 이토록 큰 소요를 일으키는 악령이 바로 너냐? 이냐시오는 대답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마음에 모신 이는 악령이 아닙니다! 황제가 말하였습니다. 너는 나자렛 사람 예수를 말하는 것이로구나? 주교는 그렇다고 답하며, 황제에게 이교 우상숭배의 어리석음을 가르쳤습니다. 이에 황제는 격노하여 병사들에게 말하였습니다. Ad leonem, 곧 사자 앞으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구하고 그의 죽음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냐시오는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순교의 관을 자기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로마에 도착하자, 그는 원형 극장에서 엄청난 군중 앞에서 굶주린 사자 두 마리에게 넘겨졌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그에 앞서 성 이냐시오는 큰 소리로 기도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내 입에서 떠날 수 없다. 설령 떠난다 하여도 그분은 내 마음에서 지워질 수 없다. 이 노인의 굳셈과 기쁜 죽음에 이교도 구경꾼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사자들은 그를 찢어 몇 개의 뼈와 심장만 남겼습니다. 심장에서는 푸른 핏줄로 이루어진 예수라는 이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 이냐시오의 동행자들은 밤에 원형 극장에서 그의 유해를 거두어 안티오키아로 가져갔고, 그곳에서 그 유해는 제대에 모셔져 깊이 공경받았습니다. 이 일은 서기 107년에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성인을 특별히 높이셨습니다. 그가 예수라는 이름을 높이 공경하였기 때문입니다.1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538–594)에게는 그의 수호천사가 예수라는 이름을 작은 카드에 적어 병든 아버지의 베개 밑에 넣으라고 권고하였고, 그 아버지는 곧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포르토 마우리치오의 성 레오나르도(1676–1751)는 예수라는 이름이 적힌 카드를 문에 붙이라고 권하였고, 그로써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질병과 재난에서 보호받았습니다.
1 출처: Spirago 796, 앞의 책.
영국의 에드문드 왕(840–870), 훗날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그에게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의 힘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에드문드가 홀로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아름다운 소년이 나타나 물었습니다. 에드문드, 너는 나를 모르느냐? 에드문드는 모른다고 답하였습니다. 소년은 말하였습니다. 나를 바라보아라.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에드문드가 그 아이를 자세히 바라보니, 이마에 빛나는 글자 INRI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나자렛 사람 예수, 유다인들의 임금)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말하였습니다. 이제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너는 나의 이름을 보고 있다. 이 이름을 마음에 새겨라. 매일 저녁 십자 성호를 그으며 「나자렛 사람 예수,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말하여, 이 이름을 너의 이마에 적어라. 그것이 너를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지켜 줄 것이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들어 높입니다. 영영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합니다. 시편 145,1
기도하는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는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이렇게 씁니다. 내가 늘 입에 담는 것, 늘 마음에 간직하는 것, 쉬지 않고 글로 쓰는 것, 내 철학의 가장 깊은 핵심은 예수님,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다.
그는 아가에 대한 강해에서 기름과 신랑의 이름 예수님 사이의 유사성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세 가지 속성에 바탕을 둡니다. 기름은 불을 살리고, 몸을 기르며, 고통을 달래 줍니다. 곧 빛이며 양식이며 약입니다. 이제 신랑의 이름에서도 같은 효력을 찾아보십시오. 그분을 선포하면 빛을 비추고, 그분을 묵상하면 양식이 되며, 그분을 부르면 기름을 바르듯 달래 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불행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나 너를 구하여 주리라. (시편 49,15; CBCK 50,15) […] 내 영혼아, 너는 예수님의 이름 안에 너의 묘약을 작은 병에 담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치유의 힘이 있어서, 너의 모든 병에 결코 효험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오, 이 약을 늘 가슴에 지니고, 늘 손닿는 곳에 두어라. 그리하여 너의 모든 생각과 행위가 예수님을 향하게 하여라.
당신의 이름은 부어 놓은 향유랍니다. 아가 1,2 (CBCK 1,3)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1181–1226)가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에 대하여, 첼라노의 토마스는 기도에 잠긴 듯 이렇게 씁니다. 그는 거룩하신 주님,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면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마음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온전히 환희와 가장 순결한 기쁨에 가득 찼고, 참으로 새사람이며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
또한 첼라노는 성 프란치스코가 강생과 예수님의 수난을 끊임없이 묵상하였다고 전합니다. 무엇보다 그의 생각을 사로잡은 것은 예수님 강생의 겸손과 그분의 수난으로 드러난 사랑이었으며, 그는 그 밖의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그는 베들레헴의 아기 또는 예수님을 부를 때면, 마치 입술을 핥듯이 행복한 입천장으로 이 이름의 달콤함을 맛보고 들이마셨습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이백 년 뒤,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아들인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1380–1440)는 예수라는 이름의 기수가 됩니다. 그는 이 이름을 공경하는 것이 신앙을 저버리는 것에 맞서는 큰 치유책임을 깨닫고, 예수라는 이름에 대한 뜨거운 설교 없이는 단 한 번도 대중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전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는 마침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그 영광스러운 이름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거의 잊혀졌다는 것을 보았을 때, (필리 2,9) 사도를 참되게 본받는 사람으로서 이 이름을 모든 임금과 종족과 민족 앞에 전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참조: 사도 9,15)
그는 금빛 글자로 이 이름이 그려지거나 새겨진 작은 나무판을 마련하였습니다. 매일 그의 설교에 모여드는 군중에게 이 판을 들어 보이며, 높은 목소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표지이며, 하느님 백성의 무기입니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이것이 그 이름입니다. 이 이름 말고는 여러분이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참조: 사도 4,12) 또한 이것은 구원을 주고 사랑이 가득한 이름이니, 여러분은 이 이름의 그림을 가슴에 지워지지 않게 지니고 매일 그것을 바라보며 광장에 내걸 수 있고, 여러분 각자는 이 이름을 자기 집 문 위 상인방에 눈에 띄게, 품위 있는 아름다움으로 그려야 합니다.
이것은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한 날에는 늘 눈앞에 두고, 불행한 날에는 불러야 할 이름입니다. 이 거룩한 이름은 첫째로 예언자가 증언하듯 생명의 책에 적혀 있으며, 복음에서 보듯 우리 구원의 십자가 명패에 적혀 있고, (참조: 요한 19,19) 또한 이 이름은 하늘 고향에서 모든 성인의 이마에 적혀 있습니다.2 (참조: 묵시 22,4)
승리하는 예수 이름의 찬미와 영광을 위하여,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모독한 죄를 보속하기 위하여, 성 베르나르디노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 아주 구체적인 공경 방식을 권하였습니다.
-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부르는 끊임없는 마음의 기도
- 눈에 보이는 표지로서의 예수 이름 모노그램
-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에 대한 공경을 열심히 퍼뜨리기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시편 96,2
2 Das Leben des heiligen Bernardin von Siena, Lothar Schläpfer OFMCap 번역, W. Nigg·W. Schamoni 편, 뒤셀도르프 1967.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의 햇빛 속에서 살기
영적 생활의 열쇠는 예수 기도입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우리의 영혼을 다이아몬드나 아주 맑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성으로 생각해 봅시다. 그 안에는 하늘에 많은 거처가 있듯이 많은 방이 있습니다. (참조: 요한 14,2) 나는 영혼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능력을 비유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합니다. 나의 체험에 따르면, 기도와 묵상이 그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다윗의 자손의 열쇠
예수라는 이름은 가장 짧은 마음의 기도이며,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창조된 우리 영혼의 신비로운 성에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참조: 콜로 1,12)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 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 그리고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 곧 […]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 주겠다. 묵시 3,7-12
하늘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 구원자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열쇠도 가지고 계십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그분께서 시간과 영원을 위하여 우리 마음에 어떤 소명을 두셨는지 참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한 암호이며, 또한 이웃을 올바르게 알아보고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런 뜻에서 동방 교회의 한 수도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가게에서,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버스에서, 줄을 서 있는 곳에서 만나는 모든 남녀에게, 특히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음과 입술에 예수님의 이름을 품고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 모두에게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들의 참된 이름이 곧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공경하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십시오. 이 남녀들 가운데 많은 이들 안에 예수님께서 갇혀 계십니다. 그들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고 공경함으로써 그분을 해방해 드리십시오. 우리가 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사람 위에 예수님을 부른다면, 그들은 우리 앞에서 변화되고 변모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자신을 내어 줄수록, 이 새로운 시선은 우리 안에서 더욱 분명하고 생생해질 것입니다.3
그리고 동료 인간들에게 상처를 입거나 모욕을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면, 러시아 순례자의 말이 도움이 됩니다. 누가 나를 모욕하면, 나는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달콤한지만 생각합니다. 그러면 즉시 모욕과 모든 분노가 사라지고, 나는 모든 것을 잊습니다.4
3 Im Namen Jesu ist Heil, 동방 교회의 한 수도자 저, Dr. Oswald Loretz 번역, 인스브루크 1959, 58–59쪽, 인스브루크 사도 행정구 Imprimatur 2557/2호, 1958년 12월 31일.
4 예수 기도는 우리가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기도는 세상 도피나 세상 부정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삶을 최고도로 긍정하는 형태입니다. 예수 기도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거부하지 않으며,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가장 높은 존중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이 세상으로 들어가는 신비로운 열쇠, 모든 사물과 사람을 숨겨진 채로 바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하느님의 봉인을 찍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Kallistos Ware, Hinführung zum Herzensgebet, 프라이부르크 1982, 72–73쪽, Imprimatur: 프라이부르크 i. Br., 1982년 9월 13일)
예수 이름의 흠숭 (엘 그레코)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부름
요한 미하엘 자일러 주교는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씁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 10,13) 이것은 모든 약속 가운데 가장 큰 약속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어느 누구도 제외하지 않으며, 모든 이에게 최고의 선을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 이 약속은 작은 선물이 아니라 최고의 선을 우리가 기대하게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복된 이가 된다. 복락, 곧 사람의 최고의 선은 모든 이에게 풍성하신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풍성하신 주님께서 주셔야 한다면, 가난한 이들은 자기에게 건네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죄, 자신의 비참함, 자신의 가난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지 않고 그분을 통하여 부유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는, 주님을 자기의 주님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그는 그분 손의 선물을 업신여기며, 가난하고 비참한 채로 남고, 죄인으로 남아 죄의 저주를 지니고, 사랑 없이, 복락 없이 머뭅니다. 반면 자신의 죄와 사랑과 복락에서의 가난을 알아보고, 모든 이에게 풍성하신 그리스도를 자기 주님으로 알아보는 이는 그분께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풍성하신 분이시여, 저에게도 그러하소서!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도록 저를 가르치소서. 저의 구원이 되어 주시고, 사랑 안에서 저를 복되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 그는 하나씩 연이어 선물을 받으며, 자기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 안에서 사랑하며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을 경건하고 사랑 가득하게 부를 때,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구세주이신 분과 하나가 됩니다. 그분은 지극히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을 통하여 곧바로 현존하시어, 우리 영혼을 당신의 은총으로 어루만지시고 선물로 채워 주십니다.5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동시에 그분의 구원 공로를 우리 위에 불러내리는 것이며, 그 공로는 주님과 하느님께로 향하는 이 행위를 통하여 다시금 새로이 힘을 발휘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참으로 깨닫는다면, 이 행복한 진리가 우리 마음 전체를 꿰뚫고,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왕도는 우리 삶의 맥박이 될 것입니다.
5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은 그분의 이름 안에 현존하며 작용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현존하는 신성입니다. 「임마누엘 –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누군가 주의 깊고 숙고하며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스스로 하느님의 현존 안에 들어가고, 그분의 힘에 자신을 열며, 자신을 도구이자 봉헌물로서 그분의 손에 넘겨 드립니다. 이런 접촉은 우리에게 더 큰 초자연적 생명과 이웃 사랑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고유하고 성사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같은 책, 134쪽)
최후의 만찬
우리 영혼은 최후의 만찬이 언제든지 거행될 수 있는 만찬의 방입니다. 예전처럼 예수님께서 은밀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루카 22,15)
눈에 보이는 성체성사에서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바쳐지십니다. 우리 안의 성체성사에서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을 통하여서만 그분을 지칭하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영적 성체로 만들 수 있습니다.6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이사 26,8
6 같은 책, 67쪽.
예수 이름의 빛은 마음을 통하여 빛나고, 그렇게 온 우주를 밝힌다. 세르게이 불가코프 신부
예수 이름을 되풀이하는 것은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과 비슷합니다. 그것은 결코 힘겹거나 억지스럽거나, 급하거나 소란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섬세하고 가볍고, 말의 가장 깊은 뜻에서 은총처럼 우아해야 합니다. 새가 원하는 높이에 이르면 날갯짓을 쉬고 활공하며, 공중에 머물기 위해서만 가끔 날개를 칩니다. 그처럼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생각함」으로 가득 찬 영혼도 이름을 되풀이하는 일을 멈추고 우리 주님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다른 생각들이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밀어내려 위협할 때에는,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하여 다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십시오.7
기도, 주님과의 대화를 사랑하십시오. 모든 것은 사랑하는 데, 곧 주님과, 그리스도, 곧 신랑과 사랑에 빠지는 데 달려 있습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7 Im Namen Jesu ist Heil, 26쪽.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 7,37 (CBCK 7,38)
예수 기도는 보이지 않는 영적 강과 같아서, 끊임없이 하느님의 힘, 곧 그분의 거룩한 은총을 언제나 흐르는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 영혼 안으로 쏟아 붓습니다. 그 강은 결코 힘을 잃지 않으며, 우리의 영적 용량이 넓어질수록 그 은총의 흐름도 더욱 많아집니다. 스키마 수도자 일라리온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은 찬양받으소서. 시편 113,3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 안에서의 평화와 화해
예수라는 이름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평화와 화해에 이르게 될까요? 다시 한 번 동방 교회의 수도자가 말하게 합시다.
이름 자체가 정화와 완성의 수단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그 불순물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금석이며 여과기입니다. […]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예수 이름은 승리와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이미 예수 이름과 우리 주님의 현존으로 가득 찬 마음은 어떤 죄스러운 생각이나 형상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방어가 무너지고, 그때 우리 안의 유혹은 휘몰아치는 물살과 같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유혹을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욕망과 씨름하지 말며, 폭풍을 바라보지 말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도 마십시오.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매달리며,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을 부르십시오. 베드로가 물 위로 예수님께 걸어가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움에 빠졌고 (마태 14,30)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파도와 바람을 바라보는 대신 결연히 물 위로 예수님을 향해 걸어간다면, 그분께서 손을 뻗어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요엘 3,5)
예수 이름은 용서와 화해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중대한 죄를 지었을 때(가벼운 죄를 지었을 때는 더욱), 우리는 한순간에 회개와 사랑으로 지극히 거룩한 이름께 향할 수 있고, 그 이름을 온 마음으로 부르면, 그렇게 사용된 이름(그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격에 닿습니다)은 이미 용서의 표지가 될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우리는 손 놓고 기다리거나, 미루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합당하지 않더라도, 다시 이름을 부르는 일을 시작하기를 주저하지 맙시다.8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을 부르면, 우리 영혼 안에서 아주 특별한 정화의 과정이 시작되어, 모든 불순하고 거룩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고, 그리하여 우리 마음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씁니다.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은 영혼에게 그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 보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속의 악이 의식되고, 나중에는 선도 의식됩니다. 처음에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은 모든 악마의 힘을 움직이게 하고, 그다음 그것을 서서히 길들입니다. 그렇게 기도는 우리 안에 머무는 죄를 드러내고, 그 죄를 지워 버릴 수 있습니다.
8 Im Namen Jesu ist Heil, 34쪽, 42–44쪽.
그리스도와 탕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마음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그곳을 지배하는 적대자를 길들이고, 영혼을 해방하며 살아나게 합니다. 이 정화의 길에서 고해성사는 우리의 영적 성장에 가장 중요합니다.9
저녁에 양심 성찰을 하면서 우리가 탕자처럼 하늘 아버지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이렇게 말한다면,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루카 15,19) 그리고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광을 드리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선다면, 우리의 천사가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 자비의 충만함과,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과 은총의 풍성함을 보여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묻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한 탈렌트, 곧 가르치고, 이끌고, 충고하고, 돕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재능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우리의 삶은 「소홀함」과 「하려고만 했던 것」, 그리고 「하지 않았던 것」의 연속이 아닌가? 그때 우리 눈에서는 회개의 눈물이 흐르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9 고해성사를 언제나 열심히, 신뢰와 존경과 죄에 대한 내적 아픔으로 받으십시오. 이 은총의 수단은 악마에게 큰 공포를 주며, 악마는 영혼들이 이것을 미지근하게, 습관적으로, 회개와 다른 필요한 조건 없이 받게 하거나, 그렇게 받도록 이끌려고 많은 애를 씁니다. (아그레다의 마리아 수녀, Leben der Jungfrau und Gottesmutter Maria 제4권, 212쪽, 예슈테텐 1982, Imprimatur: 잘츠부르크 대교구 사무국, 1954년 5월 31일, Zl. 1311)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행위와 사랑의 분량을 언제나 가득 채우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몸을 기울이시고 우리의 분량을 헤아리십니다. 우리의 작은 조각 위에는 우리 주님의 피의 방울들, 우리 주님께서 겪으신 죽음의 공포의 땀방울들이 놓여 있고, 그것으로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무능을 덮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우리가 그 자녀인 우리 어머니의 티 없으신 성심이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너무나 크고 넓어서 그 분량을 가장자리까지 채웁니다. 그 위에 우리의 천사가 자신의 「거룩하시도다」를 더 얹어, 우리와 함께, 또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바치면서, 분량이 차고 넘치도록 가득 찰 때까지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마치 그것이 우리 것인 양 받아들이시고, 탕자를 대하듯 사랑을 가득 담아 우리를 당신 팔에 안아 주십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한 성녀에 따름)
여러분의 영혼이 경외와 그리움으로 이 일곱 낱말,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되풀이한다면,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 이 말을 하십시오! 이 말에는 그토록 많은 진액이 담겨 있습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은수자 테오판은 자신의 마음의 기도 학교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일하면서 예수 기도를 바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10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서 걷거나 하느님의 시선 아래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찾으신다는 의식을 지니는 것입니다. 이 의식은 영적 생활이라는 기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지렛대입니다. 예수 기도는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는 등불이며, 하늘로 가는 우리 길의 길잡이 별이기 때문입니다.11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것은, 그분의 영광에 온전히 맞추어 살며,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모두 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일을 기도로 감싸고,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는 것을 뜻합니다. 일을 시작할 때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고, 일하는 중에는 그분의 도움을 부르며, 일을 마칠 때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시도록 허락하신 데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입니다.12
제 안에서 생각하소서, 오 예수님, 그러면 제 생각이 밝고 맑으리이다. 제 안에서 말씀하소서, 오 예수님, 그러면 제 말이 부드럽고 참되리이다. 저를 통하여 일하소서, 오 예수님, 그러면 제 행위가 의로울 것이며, 제 일도 거룩해지고, 제 쉼도 거룩해지리이다. 제 온 존재에 스며드시고 제 온 존재를 채우소서, 사람들이 저에게서 당신의 큰 사랑을 읽을 수 있도록.
10 예수 이름은 홀로 쓸 수도 있고, 다소 짧은 문장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동방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형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입니다. 더 간단하게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 예수」입니다. 가장 짧은 부름의 형태는 「예수」라는 이름 하나뿐입니다.
11 기도는 행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최고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도에도 이 말은 예수 기도만큼 들어맞지 않습니다. 올바로 실천된 이름 부르기는 누구든지 자신의 일에 더 깊이 다가가게 합니다. 모두가 더 유능해지고, 그렇게 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고립되지 않고 그들과 연결됩니다. 그는 그들의 두려움과 걱정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민감해집니다. 예수 기도는 누구나 「타인을 위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Hinführung zum Herzensgebet, 72쪽)
12 Schule des Herzensgebetes, Die Weisheit des Starez Theophan, 잘츠부르크 1985.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골로 3,17
인생의 시간은 은총의 시간
하느님께서 이미 이 생에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구원은 언제나 올바른 순간에 묶여 있으며,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이사 49,8)
우리의 세월은 하느님께서 빌려주신 수정 그릇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채워야 하며, 채운 뒤에는 그것을 영원히 간직하시는 하느님의 손에 돌려 드려야 합니다.
- 하루를 시작하며 첫 순간을 하느님께 드리고, 하루의 일이 모든 시간의 주님이시며 영원의 아버지이신 분을 향하게 합시다. 모든 것을 나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 매일 십자 성호와 마음의 기도 연습을 통하여 자신을 하느님 사랑의 보호와 안온함 안에 두는 모든 이는 행복합니다.
-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고, 그들에게 하느님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시간을 내는 부모는 행복합니다. 그들은 자녀들로부터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 예수님과의 접촉을 통하여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어머니 마리아의 손을 잡고 그분을 위하여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저를 당신과 더 닮게 하소서! 당신의 빛이 저 위에 머물게 하시어, 제가 저의 주변 세상에 선으로 빛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한 가지를 더 마음에 새겨 주기를 바랍니다. 곧 구세주께 언제나 마음을 열어 두고, 그분을 두려워하여 마음이 멀어지는 일이 결코 없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짓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뢰를 가지고 그리스도께 돌아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가고, 누구를 신뢰하겠습니까?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슈톨베르크(1750–1819)가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 권고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고 감사하기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우리가 당신의 이름에 의지하여 청하면 청을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요한 14,13)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청하고도 인간의 판단으로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여겼습니까? 그러나 솔직해진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였는가? 즉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뜻을 아버지의 뜻 안에 놓았는가? 제자들은 분명히 이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요한 16,23 [CBCK 16,24])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나라를 생각하고 고난을 피하고자 했던 사도들의 청을 조금은 압니다. 우리의 청이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약속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가장 작은 기도와 가장 조용한 청도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요한 5,14)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물로 우리를 넘치게 채우기를 깊이 갈망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신적이며 지극히 거룩한 뜻보다 더 큰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도움과 은총을 청하며, 온 마음으로 그분께 감사하기를 결코 그치지 맙시다. 모든 감사는 우리가 더 많은 은총을 받는 새로운 청원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필리 4,6)
아빠,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님의 이름을 보시어 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인간의 영이 기도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의 은총이 그를 찾아옵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눈먼 이를 고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 안에서 치유와 해방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하고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마 사제 가브리엘레 아모르트 신부는 자신의 체험을 많이 글로 남겼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제들과 심지어 주교들이 있습니다, 아모르트 신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악마와 구마를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마귀 들린 이들을 치유하셨다고 말하면, 그들은 「마귀 들림」이라는 말은 당시의 언어와 문화에서 나온 표현으로, 실제로는 단지 병자였던 이들을 악마에 들린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두 상태를 분명히 구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악령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해방하십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권능을 주십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마르 16,17)
주교에게서 임명받은 구마 사제만이 시달리는 영혼을 악마의 영향에서 해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복음에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이름을 온전한 헌신으로 믿는 모든 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성인들에게서 우리는 그들의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악을 쫓아냈다는 것을 압니다. 성 베네딕토나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악마를 쫓아내시는 분은 언제나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아모르트 신부는 수없이 되풀이하였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간절히 부르나이다. 저에게 굳건한 믿음과 힘을 주시어, 당신의 계명에 충실하게, 확신을 가지고 이 악마를 공격하고 당신 팔의 힘으로 쫓아내게 하소서. 그러므로 저희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이름으로 청하나이다 …
아르스의 성 본당 신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아모르트 신부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적의 권세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악마의 힘은 언제나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악마가 침투할 수 있도록 열린 문들의 수입니다. 마술, 오컬트, 심령술, 그리고 중대한 죄 속에서의 삶. 또는 사탄에게 자신을 바치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마귀의 희생자를 두 부류로 구분합니다. 한편에는 하느님을 사랑한 까닭에 자기 잘못 없이 악의적인 장애, 심지어 「보속의 마귀 들림」을 견디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르스의 성 본당 신부나 아벨린의 성녀 마리암이 그런 경우입니다. 또한 저주를 통해 죄 없는 희생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마귀의 권세에 내맡겨진 이들이 있습니다. 중대한 죄 속에 머무르거나, 예컨대 유다처럼, 또는 오컬트 행위를 통하여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아모르트 신부는 악마와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다음과 같다고 가르칩니다. 고해성사, 거룩한 미사, 거룩한 영성체, 성체 조배, 시편, 그리고 묵주기도입니다. 이 수단들을 다 써 버린 뒤에야 그는 구마 사제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을 쫓아내기 위한 공식 기도문을 사용하였습니다. 대략 계산하여 칠만 번 이상 구마를 행하였는데, 그때마다 나는 큰 연민에 사로잡혔습니다.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의 경우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구마는 매우 힘든 사제직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한 사람들이 해방되는 것을 사제가 체험하기에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다. (루카 6,19)13
여러분이 큰 사랑을 지니고 있고, 그 사랑이 여러분을 기도로 이끈다면, 여러분이 기도하는 사람을 향하여 여러분 사랑의 물결이 넘쳐흐를 것이며, 그 사랑은 그 사람 안에서 작용하고 그 주위에 방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를 그렇게 감화하여 선으로 이끕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노고를 보시면, 여러분에게,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사람에게도 넘치도록 은총을 베푸십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치유와 보호의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희를 향한 당신의 사랑에 감사드리나이다. 저희 모두를 당신의 상처 안에 감싸 주시고, 저희에게 당신의 구원을 베푸소서. 주님, 청하오니 당신과 마리아의 인장으로 저희에게 표를 해 주시어, 악의 모든 공격과 모든 재앙에서 저희가 보호받게 하소서. 저주와 악담과 마귀 들림과 우울과 우울증과 두려움에서 – 저희를 해방하소서, 오 주님!
당신은 저희에게 거듭 말씀하시나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러므로 저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나이다.
주님, 청하오니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로 저희에게 모든 저주와 악담에서의 해방을 허락하시고, 언제나 당신의 평화로 저희 모두를 기쁘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저희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하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지니고 계시나이다. 당신의 치유하시는 사랑으로 저희를 어루만져 주소서. 저희 마음과 영혼 안에서 상처 입고 다친 모든 것을 낫게 하소서. 저희 삶에서 저희를 아프게 하는 모든 기억을 치유하소서. 다른 사람들이 저희에게 입힌 모든 상처를 치유하소서. 상처 입고 다친 모든 것을 치유하소서. 당신의 못 박히신 치유의 손을 영혼과 몸의 저희 모든 상처 위에 얹으시어, 온전히 나을 때까지 계시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모든 육신의 질병도 아시나이다. 당신의 치유하시는 힘과 치유하시는 따뜻함으로 그것들을 어루만지시어, 병든 저희의 모든 기관을 낫게 하소서. 당신은 온 세상의 구세주이시니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오니, 아버지의 사랑을 저희에게 풍성히 베푸시고, 이제 저희가 그 사랑을 마음으로도 느끼게 하소서. 아멘.14
13 참조: Triumph des Herzens 26. Jg. (I) 2019/ Nr.152.
14 클라우스 뮐러 신부(1946–2001)의 이 자유로운 말로 된 기도는 나중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의 삶은 성덕이 높은 사제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기도와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많은 은사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를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풍성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1994년부터 그는 모든 악에서의 보호와 하느님 안에 보호받는 미래를 위하여, 청하는 모든 이의 이마에 하느님의 인장으로 표를 해 주었습니다.
마리아와 요한과 함께한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숨겨진 보화
선택된 이들의 모든 영웅적 행위, 모든 순교자의 고통, 지금까지 살았고 세상 끝까지 살아갈 모든 성인들의 덕행과 공로, 심지어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의 덕행과 공로를 우리가 소유한다 해도, 그 모든 것은 단 한 번의 예수님의 봉헌과 비교하면 모래알 하나와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내어 그분을 어떻게 사용할지 아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천 번이나 행복합니다! 그 영혼은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가집니다. 그분이 그 영혼에게 충분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인들을 공경하는 일이 쓸데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인들의 공로에 관을 씌우실 때, 그분은 당신 자신의 선물에 관을 씌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공로를 하느님께 봉헌할 때, 우리는 실제로 그분 자신의 아드님의 공로를 그분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인들 안에 있는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는 일에 기뻐합시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그들 안에서 그토록 기뻐하시는 것이고, 그들의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모든 다른 이들보다 예수님과 더 깊이 하나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인들의 위계 안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우리가 마리아! 하고 부르면, 그분은 예수!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마리아께 가면, 그분은 우리를 예수님께 이끄십니다. 마리아께서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셨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셨으며, 예수님께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께 모든 것이었고, 그분 삶의 전부였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청한다면, 예수님을 우리의 「모든 것」으로 삼는 법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봉헌한다, 그분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어째서 많은 기도서에서조차 이 생각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봉헌하는 것! 그것은 그분을 아버지께 보속으로 바치는 것, 이렇게 말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보소서, 저는 연약함과 비참함뿐이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힘과 거룩함과 순결과 덕행을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저는 차갑나이다. 그러나 제가 세라핌들의 모든 사랑을 지녔다 한들, 당신께 합당한 무엇을 드릴 수 있겠나이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의 냉담함을 대신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저는 방금 넘어졌고 잘못을 저질렀나이다. 저의 정화와 보속을 위하여 예수님의 고통과 피를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이러저러한 나쁜 충동이 제 뜻과 상관없이 저를 몰아붙이나이다. 그것을 대신하여 그에 반대되는 예수님의 행위들을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연약함조차도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데 쓰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이 끝없는 봉헌을 바칠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쁜 일을 겪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그 봉헌을 떠올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봉헌한다는 것은 또한 그분을 선한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서 바친다는 뜻입니다. 이 봉헌으로 우리의 가장 작은 행위들을 예수님의 모든 행실과 결합할 뿐 아니라 이를테면 그것과 녹아들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작은 동전들을 금화로 바꾸어 돌려받습니다.
예컨대 순명하는 행위를 요구받을 때, 우리는 그 순명 행위를 기회로 삼아 영원하신 아버지께 예수님의 개별 순명 행위들을 바치고, 가능한 한 모든 완전함과 충실함으로 그것을 이행하는 데 우리의 모든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분의 신적 기쁨을 다시금 상기시켜 드리려는 것입니다. 낮아질 기회가 생기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고통 가운데에서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의 고통을 바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일에서 예수님과 하나 될 줄 알고, 그분을 하늘 아버지께 바칠 줄 안다면 얼마나 풍요로워지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거룩한 영성체 때 예수님의 봉헌을 드립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고, 우리가 그분을 그분의 아버지께 다시 돌려 드리고 바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봉헌을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 무한한 선을 얻습니다. 하느님께 그분께 합당한 선물을 드릴 수 있고, 그 결과 그분의 사랑과 신적 기쁨의 눈길이 우리 위에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영성체 전에는 우리 영혼의 정화와 우리의 모든 불충실에 대한 보속을 위하여 예수님의 고통을 영원하신 아버지께 바칩니다. 그리고 거룩한 영성체 후에는 더럽혀질까 두려워하는 보물처럼, 그것이 정해진 이에게 흠 없이 넘겨지기를 바라며, 예수님을 다시 바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찾은 영혼은 평화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비참할수록 그만큼 더 기뻐합니다. 그렇게 그 영혼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영원한 영광에 점점 더 많이 기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15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님을 당신께 봉헌하오며, 저 자신도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그분의 모든 지향에 따라, 모든 피조물의 이름으로 봉헌하나이다. 아멘. (봉헌 기도)16
삶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위로 채워지는 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영혼이 자신의 사랑의 행위들을 원죄 없으신 분의 것으로 드리면, 그분은 그 행위들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서 하느님께 전해 드리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행위는 그 모든 아름다움을 얻게 됩니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15 Imprimatur: Friburgi Helv. 1959년 12월 28일, L. Weber, vic. gen.(총대리)
16 같은 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요한 묵시록의 자취를 따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몇 주 전에 예언적인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인류가 여태껏 보아 온 가장 큰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와 반교회, 복음과 반복음 사이의 최후의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17
17 가짜 교회가 생겨날 것이다. 하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일 것이고, 거짓 예언자는 다른 교회를 세울 것이다. 거짓 교회는 세속적이고, 에큐메니칼하며, 세계적일 것이다. 그것은 교회와 종교들의 느슨한 연합이 될 것이다. […] 거짓 교회는 모든 신적 내용이 비워질 것이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신비체가 될 것이다. (풀턴 신 대주교, Der Kommunismus und das Gewissen der westlichen Welt, 베를린 1950)
태양을 입은 여인
구원자의 교회와 용
이 덧없는 삶에서 우리는 영적 싸움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 싸움은 한편으로는 하느님과 무수한 천사들과 하늘의 성인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과 그의 모든 무리가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 지켜보는 싸움입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하늘은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걸지만, 지옥은 우리를 영원한 증오에 빠뜨리려 한다는 것입니다.18
18 이 원수는 순수하고 육체가 없는 영이어서 어떤 활동에도 지치지 않으므로, 박해에 있어서 너무나 열심이어서 사람이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시작하여, 영혼이 육신에서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 그는 우리의 감각, 영혼의 힘, 경향과 열정을 이용합니다. 「내 딸아, 사람들을 향한 루치펠과 그의 악령들의 질투와 악의와 간계는 말로 다할 수 없다. […] 하늘이 모든 선행을 기뻐하듯, 지옥의 악령들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 기뻐한다.」 (Leben der Jungfrau und Gottesmutter Maria, 제4권, 192쪽, 209–210쪽)
성 요한은 요한 묵시록에서 사탄이 하느님 백성에게 벌이는 싸움을19 불처럼 붉은 용(묵시 12,3)과,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나는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묵시 13,1), 그리고 어린양처럼 뿔 두 개가 달렸으나 용처럼 말하는 땅에서 올라온 두 번째 짐승(묵시 13,11) 사이의 싸움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는 하느님의 백성과 싸웁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묵시 12,1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은 성모 마리아, 곧 교회의 어머니를 통하여 상징됩니다. 여기서 성경 처음부터 이어져 온 일관된 줄기가 계속됩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창세 3,15
19 천사들이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였을 때, 그것은 영원히 확정되었습니다. 그들은 지성으로 모든 결과를 보았고, 그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루치펠[사탄]과 그 추종자들에게는 교만이 너무나 강하여 자아를 택하였고 — 「나는 나다」라고 루치펠이 말하였다 — 그때 이 시험 한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천사 가운데 하나이며 마지막에서 두 번째 합창단에 속한 성 미카엘이 말하였습니다. 「Qui ut Deus?」 —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이 겸손한 말씀으로 성 미카엘은 루치펠과 그 추종자들을 하늘에서 심연으로 내쳤습니다. (Christus vinCit,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 주교가 다이앤 몽타냐와 나눈 대담, 키슬레크 2020, 416쪽)
마리아와 사탄 사이의 이 싸움은 땅에서는 교회와 하느님과 교회를 적대하는 세력들을 통하여 대리로 벌어집니다. 붉은 용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의 형태로, 두 짐승은 프리메이슨과 교회 안으로 파고든 교회 내 프리메이슨의 형태로 나타납니다.20 후자는 어린양과 같은 두 뿔을 가진 짐승으로, 교회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침투하였습니다.21 그 주요 목표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거짓 에큐메니즘으로 파괴하는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가 합쳐져 모든 이를 아우르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려는 것입니다.22
20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는 프리메이슨과 국제 시온주의의 가장 단호한 반대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가톨릭 교회와 싸우는 악마적 전술을 분명히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으뜸가는 적, 가장 큰 적, 가장 강력한 적은 프리메이슨이다. (Maria – Der Eckstein, Dr. med. Hans Salmen 저, 라우어츠 1995, 51쪽.)
21 이미 1846년에 라 살레트에서 천주의 성모님께서는 교회 내부의 상태와 큰 신앙 이탈 때문에 우셨습니다. 그분은 두 목동 아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의 머리와 지도자들은 기도와 보속을 소홀히 하였고, 악마가 그들의 지성을 어둡게 하였다. […] 참된 종교에서 떠나는 사제와 수도자의 수는 많을 것이며, 그들 가운데에는 주교들도 있을 것이다. […] 교회는 끔찍한 위기를 겪을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신앙이 잊혔기 때문에,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끌고 자기와 같은 이들 위에 서려고 할 것이다. (같은 책, 150–153쪽)
22 복녀 안나 가타리나 엠머릭(1774–1824)도 이 안타까운 상태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괴이한 교회를 세우고 있다. 성인이 아닌 자들의 참된 공동체! 양의 우리가 모든 모퉁이에서 불타고 있다! 그리고 목자들! 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허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이들이 그것을 다시 세우는 것도 보았다. […] 특히 종파와 배교자들에 속한 자들이 많았다. 규정과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주머니가 달리고 파란 띠로 테두리를 두른 흰 앞치마를 걸치고 허리띠에 흙손을 꽂은 사람들이 헐고 있었다. […] 나는 경악하였다. 이 프리메이슨들 가운데에는 가톨릭 사제들도 있었다. (같은 책, 28쪽)
이 싸움의 가장 큰 목표는 거룩한 미사 제사를 없애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으로 숨어 계시며 가려져 현존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제대 성사를 폐지하는 것입니다.23
성체는 신적 피뢰침으로, 하느님 정의의 번개를 막아 줍니다. 다정하고 사랑 많은 어머니가 아이를 가슴에 꼭 안고, 두 팔로 감싸고, 제 몸으로 막아 분노한 아버지의 진노에서 구하듯, 예수님께서는 곳곳에서 당신의 현존을 거듭 늘리십니다. 그분은 세상을 덮고 당신의 자비로운 현존으로 감싸 안으십니다. 성 페테르 율리아노 에이마르
23 참조: Der letzte Kampf zwischen Licht und Finsternis, Paul Josef Jakobius 저, 알퇴팅 2010.
짐승의 표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666)입니다. 누구든지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고 자기 이마나 손에 표를 받는 자는, 그 역시 하느님의 분노의 술을 마실 것이다. […] 여기에 하느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의 인내가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묵시 13,16-18; 14,9-12
이미 이천 년 넘게 전에 사도 요한은 짐승과 그의 거짓 예언자가 행하는 인류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감시를 경고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성경의 숫자 666이며, 우리가 적그리스도라고 알고 있는 자입니다. 성령의 빛 안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이 예언적 성경 구절의 뜻을 묻는 사람은, 세계적 사건들을 보면서 진리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novus ordo saeculorum)이라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관철하려는 계획이,24 적그리스도적 법과 이념으로 특징지어지고, 인류에 대한 점점 커지는 감시와 기본권의 제한과 결합되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이 이토록 위협적으로 득세할 수 있었던 까닭을 묻는다면, 구원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가 중대한 죄에 얽히는 순간, 그는 계명들이 보장하는 하느님의 보호 구역을 떠나 악의 음모와 그 재앙에 자신을 내맡기게 됩니다. 구약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아파하며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이사 48,18
24 novus ordo saeculorum이라는 표현은 세계 정부의 이념적이고 강령적인 암호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의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로 novus ordo saeculorum, 즉 세계적 차원의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세우는 것을 내세우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무관심과 혼합주의(여러 종교의 혼합)를 독재적으로 강요하고, 도덕적 타락과 급진적인 적그리스도적 정책, 특히 반가톨릭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새로운 사회 질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공경과 흠숭을 겨냥하는데, 그것은 무신론의 가장 급진적 형태입니다. (Christus vinCit, 285쪽)
지난 수십 년의 번영 속에서 옛 그리스도교 서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된 신앙에 눈이 멀어 스스로 신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재물, 돈, 쾌락, 이기적인 자아25, 그리고 그와 연결된 끝없는 악덕과 죄가 그것입니다.26 회심 후 유명한 치과 의사 글로리아 폴로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는 악마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셈이고, 그 상품을 비싸게 치러야 합니다.
25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 I-II, q.77, a.4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질서한 사랑은 모든 죄의 근원이다. 그리고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에게 자기 사랑은 모든 악의 원천이며 모든 선의 파멸입니다. 이 근본적인 악에 맞선 싸움이 그녀의 모든 글을 관통합니다. 자기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자아가 중심에 놓이는 곳에서 지배합니다(자기 중심주의, 이기주의).
26 우리 시대의 잘못된 발전에 대하여 가브리엘레 쿠비는 이렇게 씁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본성과 가정에 맞서 있다. 아이들은 피임으로 아예 생겨나지 못하고, 원하지 않으면 태어나기 전에 죽임을 당하며, 원하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출생 과정에서 혈통을 속임당하고, 배아로 얼려져 연구에 소비된다. 아이들은 빌린 자궁에서 자라고, 동성 커플에 의해 사들여져 길러진다. 아이들은 젖먹이 때부터 집단 타인 보육에 내맡겨지고, 유치원에서 이미 성애화되며, 포르노그래피에 내던져진다. 아이들은 이혼의 희생자가 되고, 자유를 빼앗긴다. 이렇게 약해진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지 않는 한 그러하다. (Kirche heute 제11호, 2020, 10–12쪽)
그러나 죄의 결과인 고통은 욥처럼, 베들레헴의 무고한 어린이들처럼, 그리고 많은 다른 무고한 이들에게도 닥치며, 그들은 하느님의 무고한 어린양과 함께 구원의 사업에 특별한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극도로 어려운 시기에 우리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온 인류를 대신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성경은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회개, 기도, 보속! 보속이란 날마다 겪는 모든 작은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또한 일을 보속의 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1947년 몬티키아리에서 천주의 성모님의 말씀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신들을 낮추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회복시켜 주겠다. 2역대 7,14
또한 이런 물음이 생깁니다. 이 반그리스도적이고 독재적인 법들에 복종하지 않아서, 그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제재를 받는 신자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성경은 이에 대한 답을 줍니다. 일어나 하느님의 성전과 제단을 재고 성전 안에서 예배하는 이들을 세어라. 성전 바깥뜰은 재지 말고 내버려두어라. 그것은 이민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들이 거룩한 도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다. (묵시 11,1-2)
성전이 재어지고 예배하는 이들이 세어진다는 것은, 종말의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 작은 무리, 마리아의 나머지 후손들이 하느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서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참조: 묵시 12,17)
이 시대에 이집트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하였던 것과 비슷한 기적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징후도 많습니다.27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이는 기뻐하고 언제나 환호하게 하소서.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 주시어, 그들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시편 5,12
27 참조: Der letzte Kampf zwischen Licht und Finsternis.
병들어 아프거나 죄스러운 생각과 의심에 시달릴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힘차게 부르거나 그분을 생각하십시오. 위험 속에서나 놀랐을 때, 집에서든 길에서든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의 이름, 우리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공경을 다하여 부르십시오. 이 이름이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 라우렌시오 유스티니아니
성모님의 군대 안에서
묵시록에 묘사된, 태양을 입은 여인은 교회의 원형이자 어머니로서 적대 세력들을 향한 군대의 선두에서 나아갑니다. 그분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아직 이 지상 생애의 시련 속에 서 있는 자녀들을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수많은 불멸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이 큰 싸움에서 마리아께서도 우리의 협력이 필요하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61년 9월,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복 절차 청원자(포스툴라토르)가 교황님의 허락을 받아 코임브라의 가르멜 수녀원으로 루치아 수녀를 방문하였고, 그에게서 받은 중요한 메시지를 가져왔습니다. 루치아 수녀는 몹시 슬퍼하며, 1917년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거의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에 천주의 성모님께서 깊은 슬픔에 잠겨 계시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자들조차 그분의 지시를 충분히 지키지 않고, 악인들은 파멸의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신부님, 천주의 성모님께서 제게 자주 하신 말씀을 모두에게 전해 주십시오. 많은 나라들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러시아는 우리가 기도와 성사로 회개의 은총을 얻지 못하면,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벌하시려고 선택하신 채찍이 될 것입니다.28 이어서 천주의 성모님께서는 루치아 수녀에게 세상에 주어진 마지막 도움 수단은 묵주기도29와 당신의 티 없으신 성심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 마리아의 말씀 안에서 파티마의 핵심 메시지가 우리에게 새롭게 빛납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토록 많이 모욕당하신 우리 주 하느님을 더 이상 모욕해서는 안 된다. (1917년 10월 13일)
묵주기도는 덕과 경건한 행실이 다시 꽃피게 한다. 묵주기도를 통하여 영혼들은 하느님의 자비의 충만함을 받는다. 그것은 마음을 돌이키게 하여, 그들은 현세의 것을 경멸하고 하늘의 것을 사랑하며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할 것이다. 많은 영혼이 묵주기도로 구원받을 것이다. 복자 알라노 데 루페에게 주신 천주의 성모님의 약속에서
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마리아의 티 없으신 성심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널리 퍼지는 것이다. 이 성심은 영혼들을 나에게 이끄는 자석이요, 나의 빛과 사랑의 광선을 온 땅에 내보내는 화덕이며, 나의 자비의 생명수를 땅 위에 흘러내리게 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기 때문이다. 루치아 수녀에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28 알고 있거라, 내 딸아, 거룩한 교회에 맡겨진 모든 성사, 특히 거룩한 성체는 지옥의 음모를 좌절시키고 모든 악마를 공포에 떨게 하는 강력한 무기이다. 내 가장 거룩하신 아들께서 바로 그 때문에 이 성사들을 제정하셨다. 그런데 이제 영혼들이 이 힘과 효력을 더 이상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영혼들이 이 성사들을 다루고 받을 때 마땅한 공경과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확신하여라. 공경과 경외로 거룩한 성사를 받는 영혼들은 지옥의 영들에게 두려운 존재다. 그들은 사탄에 대하여 크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Leben der Jungfrau und Gottesmutter Maria, 제4권, 351쪽)
29 크라치비츠 추기경이 1981년 몇몇 사제와 신자들과 함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하였을 때, 교황께서는 묵주를 꺼내 들고 「이것이 평신도도 기도할 수 있는 구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이 놀라자, 교황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의심이 없도록 분명히 말하겠다. 나는 묵주기도에 구마의 힘을 부여한다!」
마리아, 거룩한 천사들의 모후
거룩한 천사들의 모후께
존귀하신 하늘의 여왕이시며 천사들의 지극히 높으신 주인이시여, 당신은 태초부터 하느님께로부터 힘과 사명을 받으셨나이다, 사탄의 머리를 짓밟으라는 사명을. 그러므로 저희는 겸손히 청하나이다, 하늘의 군단을 저희를 도우러 보내 주소서, 그들이 당신의 인도 아래 마귀들을 뒤쫓고, 어디에서나 그들과 싸우며 그들의 방자한 공격을 물리치고 그들을 나락으로 다시 내던지게 하소서.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오 선하시고 자애로우신 어머니시여, 당신은 언제나 저희의 사랑과 저희의 희망이 되실 것이옵니다! 오 천주의 성모님이시여, 저희에게 거룩한 천사들을 보내 주소서, 그들이 저희를 지켜 주고 악한 원수를 저희에게서 멀리 물리치게 하소서. 거룩한 천사들과 대천사들이여, 저희를 지키시고 보호하소서! 아멘.30
30 1864년 1월 13일, 마리아의 시녀 수도회 설립자 세스타크 신부(1801–1868)는 앙글레(피레네)의 피난처의 성모 성지에서 갑자기 하느님의 밝은 광채의 빛줄기에 맞은 듯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귀들이 온 세상에 퍼져 곳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해악을 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는데, 마리아께서는 마귀들이 실제로 온 세상에 풀려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천사들의 모후로 부르고, 거룩한 천사 군단을 보내시어 저승의 세력과 싸우게 해 달라고 청할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의 어머니,」 하고 사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토록 선하시니, 청하지 않아도 그들을 보내 주실 수 없습니까?」 — 「아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조건이다. 은총을 받으려 할 때에도 그러하다.」 — 「그렇다면, 어머니,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로부터 「존귀하신 여왕」 기도를 받았고, 주교의 승인을 받아 온 세상에 퍼뜨렸습니다. 비범한 은총이 따르는 이 기도는 교황 비오 9세께서 권고하셨고, 레오 13세와 비오 10세께서 전대사를 주시어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이 지상 삶이 땅 위를 걷는 것이라기보다 파도와 바람과 날씨 속에 떠밀리는 것임을 알게 되거든, 이 별의 빛에서 눈을 돌리지 마십시오. 그러면 폭풍 속에서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유혹의 거센 바람이 불어오고, 환난의 바위들 사이로 휩쓸리게 되거든, 별을 바라보고, 마리아를 부르십시오! 교만과 야망과 중상과 질투의 물결이 그대를 높이 내던지면, 별을 바라보고, 마리아를 부르십시오!
분노나 탐욕이나 육신의 정욕이 그대의 영혼을 흔들면, 마리아를 바라보십시오!
죄의 짐이 그대를 짓누르고 양심의 수치가 그대를 부끄럽게 하면, 심판의 엄격함이 두렵게 하면, 깊은 슬픔과 절망이 그대를 삼키려 할 때에는 마리아를 생각하십시오!
그분이 그대를 붙드시면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지켜 주시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인도하시면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호의를 베푸시면 목적지에 이를 것이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 바다의 별」이라는 말이 참임을 스스로 체험할 것입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
시온산 위의 어린양
어린양의 나라
내가 또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묵시 14,1
십사만 사천이라는 수는 구원받는 모든 이의 총체를 상징하며, 어린양을 따르는, 곧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12는 이스라엘 지파의 수이고, 1000은 충만함의 수입니다. 요한은 그들의 이마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보았는데, 그곳은 짐승의 종들이 짐승의 표를 받았던 곳입니다. 여기서 본 어린양 예수의 이름은 그 수가 888이며, 이마에 666이라는 수를 지닌 짐승의 경배자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요한이 이마에서 「주님」(「있는 분」)이라는 이름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마에 새겨진 이름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각인된 인장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그래서 생각(이마)을 형성하는 세례의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그리스도교 세례도 암시되고 있습니다. (마태 28,19)
요르단 강에서의 그리스도의 세례
그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묵시 14,4
묵시록에서 「탕녀」라는 말은 우상을 섬기는 로마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와 반대되는 「처녀」라는 말은 언젠가 그리스도와 「혼인」하게 될 충실한 그리스도인 백성을 뜻합니다. 여기서 「처녀」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결혼했든 아니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맏물로서의 질적 의미에서, 시간과 관련 없이, 충실한 헌신으로 자신이 언젠가 「하느님과 혼인」할 날을 향하여 살아가며, 곁눈질이나 타협을 통하여 이교 신들과 「음행」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참조: 신명 5,6) 그들은 거짓 에큐메니칼 교회에 눈을 돌리지도 않고, 에소테릭한 사조나 다른 종교들의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31
31 참조: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Dr. Ludwig Neidhart 저, 아우크스부르크 2019.
성경이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할 때, 우리의 도우심은 주님 이름에 있으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시편 124)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당신께 충실하게 머무르고 참된 가톨릭 신앙을 용기 있게 고백하도록 은총을 주시리라고 굳게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름이 모독되고 욕되게 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을 영광되게 하고, 믿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악을 말하거나 행하거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을 보거나 듣는다면, 우리는 선을 말하고 선을 행하며, 영원히 찬미받으실 하느님을 찬양하고자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황금 화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서,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모든 피조물에게서, 그리고 제대의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성심을 통하여, 지극히 높으시고 가장 흠숭하올,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름이 영원히 찬양받으시고, 찬미받으시고, 사랑받으시고, 흠숭받으시고, 영광받으소서. 아멘.32
지극히 거룩한 예수 성심 공경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께 드리는 대사 기도
선하신 예수님, 당신의 크신 자비를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자애로우신 예수님, 죄인들을 위하여 흘리신 지극히 귀한 보혈로 청하오니, 저의 모든 죄악에서 저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가련하고 부당한 이 사람을 은총으로 굽어보소서!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의 이름을 부르나이다. 그러니 사랑하올 예수님,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이름을 위하여 저를 구원하소서. 아멘.
32 신적 구세주께서는 언젠가 경건한 성 베드로의 마리아 수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모독은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독 묻은 화살이다. 나는 네게 황금 화살을 주겠다. 이 화살은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한 이름에 대한 불경과 모독을 보속한다.」 성 베드로의 마리아 수녀는 이 기도를 받은 뒤 신적 환시를 받았는데, 그 환시에서 예수 성심이 이 황금 화살에 다정하게 상처 입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은총의 강물이 그분에게서 터져 나왔습니다. 기도의 사용: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공경하여 세 번 바칩니다. 부분 대사, 1881년 4월 15일. 출처: Handbuch der Erzbruderschaft vom Heiligsten Antlitz Unseres Herrn nebst dem kleinen Offizium vom Heiligsten Namen Gottes, Abbé Désiré Janvier 저, 프랑스어에서 번역, Tours 1887, 186쪽.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예수님 신비체의 수난
교회를 위하여, 세상을 위하여,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온 그리스도교 세계가 예수 기도 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여러분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여러분 자신이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교회와 하나 되어 아버지와 성령과도 하나이십니다.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교회는 하나입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비판받고, 박해받고, 공격받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블레즈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고뇌 중에 계실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잠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신앙 이탈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큰 신앙 이탈은 프리메이슨적인 거짓 에큐메니즘이 신자들을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에서 떼어 놓는 데 성공할 때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교회를 따르기 때문에, 666이라는 수를 가진 자가 나타날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비체도 주님 자신과 같은 운명을 겪을 것입니다. 박해, 멸시, 십자가형, 죽음, 그러나 부활도 있습니다. 교회도 같은 길을 걷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인류와 교회의 큰 정화가 될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오순절이 될 것입니다.33
보좌 주교 아타나시우스 슈나이더는 그의 새 책 Christus vincit에서 이렇게 씁니다.
천사에게 힘을 얻는 올리브산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수난의 정황에서 우리는 신부이신 교회의 고통이 지니는 영적이고 신비로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의 현재 위기는 가장 깊은 형태의 고통입니다. 교회가 이제 적들에게 박해받고, 채찍질 당하며, 옷을 빼앗기고 조롱당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그 목자들, 곧 사도들의 후계자인 많은 이들에게 고통받기 때문입니다.34 […]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니에서 고통받으셨을 때 천사가 그분께 힘을 북돋아 드렸습니다. 이는 깊은 신비입니다. 인성 안의 하느님께서 피조물에게서 위로와 힘을 받으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겪는 이 엄청난 영적 위기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순수한 가톨릭 신앙에 충실하게 머무르는 영혼들, 고통받는 그리스도와 고통받는 어머니 교회를 저버리지 않고 달아나지 않는 영혼들에게서 위로받고 힘을 얻으십니다.
겟세마니에서 그리스도께서 천사에게서 받으신 위로와 힘은, 교회 역사 전체에 걸쳐 모든 믿는 영혼들이 바친 모든 보속과 보상의 행위를 이미 담고 있었습니다. 현재 많은 영혼들이, 특히 지난 오십 년 동안, 교회의 엄청난 위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34 우리 교회의 벽은 배신의 비밀로 흠뻑 젖어 있다 … 우리는 악의와 배신의 비밀을 체험하고 있다 … 유다의 비밀이다 … 어디에서나 효율에 집착하는 행동주의의 병폐가 스며들었다 … 우리는 거대 기업의 조직을 흉내 내려 하면서, 기도만이 교회의 혈관을 흐르는 피라는 것을 잊고 있다 …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이는 이미 배신을 저지른 것이다. 그는 이미 세상과의 모든 타협에 준비되어 있다. 유다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로베르 사라 추기경, Herr, bleibe bei uns, 키슬레크 2019)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이며 믿음 없는 교회 기득권층에 의해 교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작은 이들의 숨겨진 고통입니다. 그들의 고통은 소중합니다. 현재 교회의 위기 속에서 신비롭게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위로하고 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
어린이, 청소년, 가정, 수도자, 사제, 주교와 추기경들도, 그리스도께 충실하게 남아 있고, 가톨릭 신앙을 변질되지 않게 간직하며, 순결과 겸손의 삶을 산다면, 교회 안의 순결하고 작은 이들입니다. 개인의 영혼에 관련된 성 바오로의 다음 말씀은 정확히 교회와, 특히 우리 시대의 교회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로마 8,17)35
여러분의 뜨거운 소원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거룩해지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낙원의 기쁨 속에서,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신성의 충만이 교회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 포르피리오스 장로
35 Christus vincit, 440–443쪽.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호천사
거룩한 천사들의 학교에서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36 탈출 23,20-22
36 나의 개인 수호천사는 나에게만 주어졌으며, 항상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있는 매우 힘센 영적 존재입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 일부가 루치펠과 함께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때, 천사들의 시험 중에 하느님께 충실하게 머물렀습니다. 나의 수호천사와 모든 수호천사는 겸손과 봉사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알아봅니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는 언젠가 인간의 겸손하고 봉사하는 수호천사가 되기를 뜨겁게 갈망합니다. 모든 천사는 몸을 낮추기를 꿈꿉니다. 그들의 「꿈의 경력」은 작아지고,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출세의 꿈에서 흔히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Christus vincit, 416, 417쪽)
파티마의 세 목동 아이들: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1917년 마리아께서 파티마에 나타나시기 전, 발현을 본 세 아이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는 1916년에 주님의 천사가 세 번 찾아오는 일로 이 큰 은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발현에서 천사는 놀이에 빠져 있던 아이들에게 간결하면서도 깊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천사의 입에서 나온 이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놀라울 만큼 깊이가 있으며, 우리 각자에게 엄청난 메시지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우리의 재능으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선물을 무상함의 모래놀이터에서 탕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천주의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 앞에서 사랑의 참된 노래를 연주하고 있습니까? 그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 잠언 8,30
이것은 우리의 개념 세계 위로 무지개처럼 높이 걸린 말씀이며, 높고 멀리 날 수 있는 영만이 이 말씀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놀이」를 우리 인간은 비유적 의미에서, 마리아가 존재 자체로 하느님 앞에 계심으로써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황홀해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천 배로 빛나는 수정과 같아서, 모든 절단면마다 다른 관점을 보여 주며, 천사와 사람이 환호와 하느님 흠숭 속에서 터져 나오게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땅으로 끌어내려 바르게 이해하려 한다면, 죄 없는 마리아에게 「놀이」였던 것이 우리 사람에게는 참으로 많은 수고를 요구하며, 우리 인간에게는 이렇게 옮겨 말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 하느님 앞에서 흠숭 가운데 있는 것, 모든 선한 것,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하느님께로 이끄는 것을 위하여 끊임없이 열심을 내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다!」 우리가 항상 하느님만을 생각하고자 하고, 작은 사랑의 표현으로 늘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한다면 — 기쁘게 드리는 희생의 형태로, 새로운 선물의 형태로, 그리고 아이가 공을 손으로 되돌리듯 늘 그분께로 돌아가려 한다면 —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마리아 어머니의 손을 잡은 아이의 놀이처럼 하느님 앞에서 사랑하며 존재하는 것입니다. 영원에 비추어 볼 때, 이 작은 땅 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놀이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이 「놀이」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걸음을 헛디디지 않도록 우리에게 발걸음마다 천사를 함께 주셨고, 그 천사는 하느님 앞에서 「연주」합니다. 그는 우리 삶의 노래,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노래를 연주하며, 우리를 위하여 대영광송과 신경과 거룩하시도다와 하느님의 어린양과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를 노래합니다. 그는 하프로 우리의 기쁨을 연주합니다. 우리 본성의 각각은 하나의 현입니다. 그 현이 하느님을 향해 울릴 때, 우리 천사는 우리의 의지 행위를 하나의 음으로 바꾸어 주님께 노래로 바칩니다. 우리의 사랑, 우리의 노력, 우리의 순명, 우리의 준비, 우리의 「예」, 우리의 침묵과 용서입니다.
이제 다시 천사의 물음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그리고 그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는 아주 구체적인 과제로 돌아갑시다.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 예수님과 마리아의 성심은 너희에 대한 자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끊임없이 기도와 희생을 바쳐라.
너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희생을 삼아, 그분을 모욕하는 죄를 보속하고 죄인들의 회개를 간청하여라. […] 무엇보다도 고통을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실 것을 순종하며 견디어라.
주 저의 하느님,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찬송하며 영원토록 당신 이름에 영광을 드리렵니다. 시편 86,12
천사들의 합창단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드리는 거룩한 천사들의 찬미 기도
당신께 인사드리나이다, 영원하신 통치자시여, 살아 계신 하느님이시여, 언제나 계셨던 분이시여, 두렵고 의로우신 심판자시여, 언제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여! 해를 입으신 당신의 딸, 저희의 놀라우신 어머니를 통하여, 당신께 새로이 그리고 언제나 흠숭과 찬양과 영예와 영광이 드려지소서!
당신께 인사드리나이다, 제물이 되신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분, 피 흘리는 어린양, 평화의 임금, 생명의 나무, 저희의 머리이신 분, 아버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 살아 계신 분에게서 영원으로부터 나신 분,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과 함께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분이시여! 당신의 티 없는 생모, 저희의 놀라우신 어머니를 통하여, 당신께 새로이 그리고 언제나 권능과 영광과 위대함과 흠숭과 보속과 찬양이 드려지소서!
당신께 인사드리나이다, 영원하신 분의 영이시여, 언제나 거룩함을 흘려 보내시는 분,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시여! 성부에게서 성자께로 흐르는 불의 물결이시여, 영원한 몸의 지체들에게 힘과 빛과 열기를 불어넣으며 소용돌이치는 폭풍이시여. 영원한 사랑의 불길이시여, 살아 있는 이들 안에서 형상을 빚으시는 하느님의 영이시여, 늘 살아 계신 분에게서 죽을 존재들에게로 흐르는 붉은 불의 강이시여! 별들의 관을 쓰신 당신의 신부, 저희의 놀라우신 어머니를 통하여, 당신께 새로이 그리고 언제나 권능과 영광과 아름다움이 드려지소서!37
37 이 놀라운 찬미 기도는 1946년 6월 25일 마리엔프리트에서 있은 천주의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가 바쳤습니다. Imprimatur: 아우크스부르크, 1966년 10월 27일. 「이것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가 천사들과 원로들과 함께 어좌 앞에 엎드려 바치는, 묵시록의 그 노래의 메아리입니다.」 (마리엔프리트에서 행한 루돌프 그라버 박사 주교의 축일 강론에서)
아이를 인도하는 수호천사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의 그림)
수호천사 봉헌
거룩한 수호천사시여,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시는 당신께 하느님께서 제 생명의 시작부터 저를 맡기셨나이다. 당신의 사랑 어린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나이다. 저를 당신께 맡기고, 당신께 저의 사랑과 충실을 약속하나이다. 청하오니 저 자신의 나약함과 악령들의 공격에서 저를 보호하소서. 제 정신과 마음을 밝혀 하느님의 뜻을 언제나 알고 이루게 하시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의 일치로 저를 이끄소서. 아멘.38
38 거룩한 천사들의 가장 큰 임무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가장 거룩하신 동정녀의 지휘 아래, 사탄과 모든 악령에 맞선 거대한 싸움을 이끌도록 그분께 명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자리는 태양을 입은 여인이 붉은 용과 맞서는 승리의 계획 안에 본질적으로 놓여 있습니다.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었습니다. (묵시 17,6) 그들은 싸움에서 늘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우리 상처를 싸매고, 악한 자에 맞서 우리를 보호하므로, 항상 그들과 함께 머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 마라나타! 묵시 22,20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이 제 마음에 있게 하소서, 제 입에 있게 하소서, 제 혀에 있게 하소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이 제 지성을 밝히고, 제 상상을 정화하며, 제 의지를 굳세게 하소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이 제 안에, 제 위에, 제 앞에, 제 곁에 있게 하소서. 저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 안에 있게 하소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이 모든 악의 공격과 유혹에서 저의 보호가 되게 하소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이 모든 무거운 생각과 모든 낙심과 위축에서 저를 지켜 주소서.
지극히 거룩한 예수 이름이 삶과 죽음 중에 저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 저의 힘과 굳셈, 저의 희망과 확신이 되게 하소서! 아멘.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묵시 22,4-5